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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투영해 본다. 크루서블
ffoy 2009-01-23 오후 4:49:03 971   [1]
 

 

  강렬하다. 불편하다. 치가 떨린다. 무겁다. 전율이 느껴진다. 나약하다. 회의적이다. 영화는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그 시점에서 뚝 끝나 버린 후, 쉴 새 없이 엄습한 단편적인 상념들이다. 
 

  [크루서블]은 그야말로 가혹한 시련 그 자체다. 분명 수작 그 이상의 명작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보는 내내 기분이 너무 찝찝했고, 감정의 혼돈이 소용돌이 쳤다. 극도의 분노와 치욕이 들끓는 가운데 짜증 섞인 답답함만이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 슬기롭지 못한 인간이여, 이토록 우리는 악하디 악하단 말인가? 아니면 약하디 약하단 말인가? 어느 쪽이든 허망한 기색을 감출 길이 없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692년 일명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때이다. 사람들의 관계와 소통이 종교라는 관념에 억눌리던 시대, 그것이 정의로운 법정에까지 손을 뻗쳤던 바로 그 시대의 이야기다. 영화는 오프닝에서부터 세속적인 요소를 가미시켜 ‘마녀사냥’이라는 아이템을 화두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거기에 표면적으로 부정한 치정관계와 복수극을 살갗에 얹어 둔다. 하지만 뼈 속으로 느껴지는 것은 종교적인 신념을 빙자한 인간군상의 위선과 욕망이다.


  특히 [크루서블]은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최고다. 물론 매우 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감정의 수위가 높고 기복이 크다는 점에서 그렇게 비춰질 수도 있지만 주조연과 단역 할 것 없이 최고의 연기를 선사해준다. 진정 메소드(method) 배우인 다니엘 데이 루이스(존 프락터扮)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에비게일로 분한 위노나 라이더의 악독한 연기도 일품이었고, 영국 아카데미가 인정한 토마스 판사역의 폴 스코필드의 냉소적인 연기도 끝내줬다. 그릇된 것을 깨닫고 바로 잡으려는 해일 목사와 파국으로 치닫기까지 계속 야비하게 비위에 거슬리는 패리스 목사의 상반된 캐릭터도 좋았다. 거짓 연극을 하는 종교적 광신도들의 모습을 보인 소녀들의 연기도 실감났고, 수수해 보이지만 냉철함이 돋보인 엘리자베스역의 조안 알렌도 탁월했다.


  마지막에 모든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판사와 의원들은 어리석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명예와 위신을 위해 상황을 급마물(!) 지으려고 한다. 어처구니없고 끝없는 인간의 이기(利己)가 느껴졌다. 정녕 이것이 인간이란 말인가. 인간으로서의 수치스러운 모욕이 마구 짓누르는 것 같았다.


  흔히들 마녀사냥, 마녀사냥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무형의 신념을 실체화 시켜버리는 인간군상의 진상짓(!)은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당시에 종교적이던 마녀사냥은 현 시대에도 어김없이 존재한다. 영화 속에서 말하는 ‘분별의 시대’가 도래하였기에 그 때처럼 사람들이 아둔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착각일 뿐 결국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지금 이 21세기에도 마녀사냥은 그 형태를 바꿔 상업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리라. 인간군상의 악랄한 지목을 받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대들이여, 교만한 욕망의 화염과 아집 같은 올가미를 피할지어다.


  영화에 비추어 볼 때,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대해 짧게 코멘트 해본다면 솔직히 기존의 그의 신들린 연기에 비해서 [크루서블]에서의 캐릭터는 평범해 보였다. 영화 자체가 워낙 시선을 거시적으로 뒀기 때문에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를 깊이 있게 추궁해내지는 못한 듯하다. 존 프락터가 좀 더 고뇌하고 갈등하는 부분이 많았다면 다니엘이 더 돋보일 수도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다른 출연작들이 막강하다뿐이지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그의 연기가 그늘에 가렸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존재만으로도 캐릭터에 대한 카리스마와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발동시키는 메소드 배우이기에 기본 내공이 훌륭하다. 게다가 엔딩씬을 앞두고 폭발하는 그의 연기 시퀀스는 오금이 저리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부끄럽지만 이런 명배우를 [갱스오브뉴욕]으로 뒤늦게 알았다. 그래서 역으로 그의 명성을 다지게 해준 과거 작품을 찾아서 챙겨보고 있다. 그런데 새삼 느끼는 건데, 대부분 영화가 수작 그 이상의 명작냄새를 풍긴다. 그의 연기로 인해서 작품이 뛰어난 걸까?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뛰어난 걸까? 물론 지금의 연기력이 작품 덕으로만 생겼다고 빈정대는 건 절대 아니다. 필모그라피가 워낙 탄탄하게 다져져있기에 신기하고 감탄스러워서 의뭉을 떨어본 것뿐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차기작 또한 정평이 나 있는 뮤지컬 원작의 [나인]이다. 원톱 매력을 선사하진 못하겠지만 또 한 번 명작 속의 명연기를 기대해 본다.

 

  이력을 보건대, 숙고해서 영화를 고르는 그의 세심한 노력과 배려 그리고 그에 맞춰 캐릭터의 옷을 갈아입는 열정이 탁월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 그와 페르소나 관계인 짐 쉐리단 감독의 영화들을 얼른 챙겨보는 게 그의 팬으로서 해야 할 일인 듯싶다.

 

 


(총 0명 참여)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7-01 16:05
powerkwd
잘 읽고 갑니다 ^^   
2009-05-2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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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서블(1996, The Crucible)
제작사 : 20th Century Fo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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