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놈의 오노때문에 직배영화는 다신 보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유혹에 못 이겨 결국 보고 말았다. 문화적인 것까지 우린 너무 많은 영향를 받고 사는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해진다. 내가 보는 영화의 대부분이 미국영화라는 것을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았나 보다. 안 볼 수도 없구 말이야...
영화가 끝나면 난 꼭 화장실에 들른다. 물론 두세시간의 영화상영이 끝난 뒤의 화장실은 늘 붐비기 마련이다. 하지만 붐비는 만큼 영화관의 또다른 풍경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온갖 영화사이트보다 더 정확하고 신랄한 따끈따끈한 영화평들이 쏟아진다. 나와 마찬가지로 방금 영화를 보고나온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영화와 영화배우에 대해 서로 한마디씩 내뱉느라 정신없다.
"러셀 크로우는 언제나 넘 멋있지 않니? " "아냐아냐...역시 전투사의 이미지가 더 잘 어울려. 살이 너무 쪄서...바지가 꽉 끼더라...ㅋㅋㅋ" "난 러셀 크로우보다 조연인 애드 해리스가 더 매력있더라. 중절모가 넘 잘 어울려." "그 여자 있잖아, 존 내쉬 마누라말야...진짜 이쁘더라...그치? 나같으면 그런 남자랑 못 살아. 벌써 도망갔지...어떻게 정신분열증 환자랑 평생을 살 수 있겠니? 그 미모에..." "근데...이 영화 실화라며? 실화라니깐 너무 끔찍해진다. 평생 그 사람들을 어떻게 데리구 다니니? "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가 들키지 않게 혼자 베시시 웃었다.
천재성으로 점점 황폐해져가는 존 내쉬의 영혼과 그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그의 아내 알리샤의 사랑과 감동의 스토리는 그 어떤 휴먼 드라마보다 더 치열하고 강렬하다... 영화는 이런 문구로 선전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뷰티풀 마인드>는 확실히 기존의 전기영화는 아니다. 전기영화라기 보다는 선전문구처럼 휴머니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결코 뷰티풀~하진 못했다. 처절함에 더 가까웠다.
내가 본 존 내쉬는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으로 불행한 천재였다. 그런 그의 삶을 극적이라고 한다면, 뭐...달리 반론을 펼칠 이유야 없지만, 난 영화를 보는 내내 슬펐다. 50년동안의 정신분열증이라니...그 환상 속의 사람들을 평생 데리고 다녀야 한다니...으으...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한 일이다.
<뷰티풀 마인드>는 천재수학자 존 내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감독은 <분노의 역류>와 <아폴로13>으로 잘 알려진 론 하워드가 맡았다. 영화는 1949년 27쪽 짜리 논문 하나로 150년 동안 지속되어온 경제학 이론을 뒤집고, 신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혈한 천재수학자 존 내쉬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론 하워드는 이 영화를 통해 불행한 천재의 훌륭한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저 이 시대의 불행한 천재를 한명 더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가끔 혼잣말로 떠드는 내자신이 두려워진다...난 천재두 아닌데...-.-;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