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기술이 아니라 모두의 열정이다...★★★☆
무조건, 확실히,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셸 공드리는 찰리 카우프만과 함께 했을 때가 최고로 좋았으며, <이터널 선샤인>은 그 정점에 선 영화였다. 최고 지점에 도달하자 카우프만과 결별한 미셸 공드리의 삐걱대는 모습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수면의 과학>을 아주 재밌게 봤다. 그럼에도 냉정하게 말해 <수면의 과학>에서 공드리는 재기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수면의 과학>에서 비주얼적인 상상에 집착하던 미셀 공드리가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여전히 뛰어난 상상력의 바탕 위에 마음을 흔드는 따뜻함이며, 잭 블랙의 코미디 연기야말로 미셸 공드리가 추구하는 바를 가장 적합하게 표현해주는 첨병(?) 역할을 잘 수행해 내고 있다.
발전소에서 감전 사고를 당한 제리(잭 블랙)는 몸에 강한 자력이 생긴 줄도 모르고 친구 마이크(모스 데프)가 일하는 비디오 대여점에 갔다가 모든 비디오의 내용을 지워버리게 된다. 손님들의 항의에 평소 카메라로 촬영을 즐기던 마이크는 제리와 함께 고객이 원하는 영화들을 직접 촬영해 대여해주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들이 제작한 영화는 전형적인 싸구려 B급 영화일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들의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비디오 가게의 매출은 오르고 잘하면 재개발의 파고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제목부터가 빌려간 테이프를 감아서 반납해 달라는 의미의 Be Kind Rewind인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우선 DVD를 지나 블루레이로 접어드는 시장 상황에서 엉뚱하게 비디오만을 취급하는 점포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이채롭다. <이터널 선샤인>에서도 사람의 특정 기억만을 지워주는 첨단 의료 기술의 시대와는 괴리되어 보이는 오랜 느낌의 거리 모습 등은 미셸 공드리의 정서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서 공드리는 허접 영화 촬영을 통해 피자로 머리가 터지는 상황을 연출하는 등 자신만의 상상력과 재기를 맘껏 펼쳐 보인다. <고스트 버스터즈> <킹콩> <러시아워2>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 고객이 원하는 비디오의 목록 자체도 참 고전스럽기 그지없다.
물론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영화로서 가능하도록 설득해 내는 건 전적으로 잭 블랙(!)이 있기에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미셸 공드리의 재기 넘치는 상상력은 잭 블랙으로 인해 분명 허구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못하도록 하는 마법을 발휘한다. 그런데 미셸 공드리의 상상력을 외화시키는 역할은 잭 블랙이지만, 미셸 공드리가 진정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대리하는 것은 마이크 역을 맡은 모스 데프이다.
약간은 어리숙하게 보이는 마이크는 촬영이 진행될수록 나름의 완성도를 높이고 스스로의 작품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열정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장면에서 극적인 피날레를 장식한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통해 본 미셸 공드리의 자리는 아마도 심형래 감독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 <디 워>를 내 놓았을 때 심 감독은 영화는 기술적 진보를 과시하는 장으로서 최대 역할을 한다는 견해를 과시하고는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그가 이룩한 CG 기술의 집합소 내지는 향연처럼 보이고는 한다. 그러나 미셸 공드리는 영화는 기술이 아니라 열정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것도 개인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는 다수의 열정이 모인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내내 포복절도할 웃음을 안겨주는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마지막에 잔잔한 피아노음을 배경으로 주민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보는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며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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