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하다"의 그 "전전"을 의미하는 제목 "텐텐"
대략 80만엔의 정도의 사채빚(?)을 진 후미야는 어느날 자신의 집을 습격한
한 남자로부터 3일안에 돈을 갚을 것을 종용받는다.
약속한 날로부터 하루 전 남자는 후미야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자신과 기한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날까지) 함께 도쿄 산책을 할 것.
일을 마무리하면 자신이 가진 돈 백만엔을 모두 후미야에게 주겠다고 약속한다.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던 후미야는 그 남자, 후쿠하라를 따라나선다.
그리고 그들의 무기한 도쿄 산책이 시작된다.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아주 단순하게 배우 "오다기리 죠"때문이었다.
일본영화를 볼 때 나의 척도는 "마츠다 류헤이" 그리고 "오다기리 죠"가 나오느냐
혹은 안나오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뭐, 둘 다 안나와도 보는 게 있기는 하지만.
여튼 전적으로 "오다기리 죠"만 보고 선택한 이 영화...개인적으론 대만족이다.
어릴 적 부모에게 버려져 양부모로부터 키워진 후미야는 이렇다할 어릴 적의 추억도
저렇다할 마음 속의 감흥도 없다. 그나마 있던 추억이나 어릴 적의 잔상들을 스스로
지워버리고 무미건조하게 무엇도 놀라울 것 없어 즐거울 것 없이 살아온 것이다.
그런 후미야가 후쿠하라와의 도쿄 산책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바뀌어가는 모습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자잘한 이야기와 감독 미키 사토시가 만든 드라마 "시효경찰"의 배우들도 카메오로
만나볼 수 있다. 또 필자가 좋아하는 일본의 중견 여배우 코이즈미 쿄코(마키코 역)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후미야는 부모의 이야기를 물으면 늘 기계처럼
"저는 어릴 적에 버려졌어요,"라고 말한다. 보통 그런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경우
슬퍼하는 기색이 있을텐데 후미야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영화 초반부에 양어머니에게
거칠게 반항하거나 대드는 것이 그녀가 실상 타인이기 때문에 와닿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서 후미야는 자신도 모르게 후쿠하라를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가족들에 둘러싸여진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 영화는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한데서 나오는 장면들이 많다. OL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횡단보도 앞에서 지갑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이나 맛집이 아닌데도 줄을 서서
먹어야만 하는 식당이라던가. 사소한 일에 정작 원래 하려던 일을 잊어버리는 후쿠하라
아내의 직장 동료들의 모습이라던가 말이다. 그리고 영화 전반에 전제하는 배우
"키시베 잇토쿠를 만나면 좋은 일이 생긴다"가 은근 포인트라고도 할 수 있다.
주인공인 후미야 역시도 이 "키시베 잇토쿠"를 만나고 스스로 좋은 일이라 생각할
만한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텐텐"을 보는 내내 나는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영화는 따듯하고 포근했다.
소소한 모든 것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고 신선하고 그리고 감명 깊게 다가왔다.
이 영화의 주제? 그런 걸 말하자면 딱히 모르겠다. 타인끼리도 가족같은 유대를 느낄 수 있다?
혹은 행복은 아주 사소한 것에 있다? 이렇게 저렇게 써봐도 역시 딱 맞아떨어지는 건 없다.
일본영화들은 대게 감성적인 잔감동을 많이 준다. 대표적으로 예전에 본 "초속 5센티미터"라는
애니가 그랬다. 감성이 극도로 응축된 그런 느낌이었다. 사실상 줄거리는 이렇다 할 게 없었더랬다.
그래서 일본영화들에는 꽤 여운이란 게 있는데...그렇다고 모두 잘 만든 영화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텐텐"은 잘 만든 영화라고 하고 싶다. 오다기리의 쭈뼛거리는 듯하면서도 할 말 다하는
그런 연기도 좋았고 후쿠하라역의 미우라 토모카즈도 적격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연기를
보여줬다. 아, 그리고 전진의 여고생4에 나오는 조증 여자애 같은 역의 후후미...개인적으로는
참...비호감이었다(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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