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을 본 사람에게나, 안 본 사람에게나 곤욕..... ★★☆
한 때 많은 사람들을 잠 못 들게 하던 원작만화 <20세기 소년>은 어린 또는 젊은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독특한 만화다. 독특하다는 건 주인공이 거의 아저씨인 어른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 떠올렸던 공상의 현실화를 목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 번쯤은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구를 구했을 것이고, 조금 더 자라선 노래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우디 거스리가 기타 케이스에 써놨던 ‘이 기계(기타)가 파시스트를 무찌른다’는 말처럼. 그러나 조금만 더 나이가 들면 노래가 세상을 구원하기는커녕 먹고 사는 문제 하나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일상 속으로 빠져든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20세기 소년>이 독특한 건 누구나 악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되고자 했을 때, 반대편에서 진정으로 악이 되어 지구를 멸망시킬 계획을 세운 아이가 있었다는 것이고,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실제로 그 계획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친구’의 예언과 실천이 ‘어린 아이들의 공상처럼 유치하다’는 지적은 원작 만화에서도 거론된 것인 만큼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리고 물론 ‘친구’가 그런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게 되는 이유도 어린 아이의 생각만큼이나 유치하다. 그리고 그런 절대 악에 대항하는 무기가 노래의 힘이라는 것도 유치할 정도는 아니지만 순진한 발상이다.
결론적으로 영화 <20세기 소년>은 원작을 본 사람에게나 안 본 사람에게나 곤욕이다. 영화는 원작 만화와 마찬가지로 1960년대, 70년대, 80년대, 2000년을 끊임없이 오고가며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원작을 안 본 사람들, 즉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구조다. 그래서 곤욕이다. 영화 상영 도중에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원작을 봤다면 괜찮지 않을까? 역시나 곤욕이다.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은 여기저기 실린 인터뷰에서 영화 제작의 원칙에 대해 “원작을 완벽하게 카피하자고 생각했다”는 대답을 하고 있다. 원작을 본 사람이라면 느꼈겠지만 영화 <20세기 소년>은 강박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사실상 만화의 각 컷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놓고 있다. 이건 마치 극장에 와서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화면에다 만화책을 띄워 놓고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감독은 원작의 카피를 위해 영화적 각색과 연출을 거의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원작의 성실한 카피를 위해 감독은 심지어 켄지의 편의점을 점검하는 본사 마케팅 직원의 일화까지도 담아내고 있다. 그나마 오쵸의 태국 생활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넘어간 건 정말 고맙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강박적인 원작의 카피는 과도한 상영시간이라는 결과로 나타났고 보는 관객을 지루함의 덫으로 끌어 들였다.
반면 영화 <20세기 소년>의 장점이라면 우선 만화책에서 금방 빠져 나온 듯한 생생한 인물 묘사일 것이다. 이건 이 영화의 단점인 원작에 대한 강박적 카피에서 근거한 것이겠지만, 특히 오쵸나 만죠메, 요시츠네, 동키, 후쿠베, 얀보와 마보 쌍둥이 형제 등은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완전 만화책 속 인물이었다. 그리고 T.Rex의 <20th Century Boy> 등 그저 그림으로 느껴야 했던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영화의 맛이긴 하다. 그 중에서도 극장에서 울려 퍼지는 <켄지의 노래>는 원작을 기억하는 팬에겐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다.
※ 영화는 서태지의 신곡 <T`ikt`Ak> 뮤직 비디오로 시작한다. 그런데 뮤직 비디오가 상영되기 직전 한 여성이 혼자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뮤직비디오를 보더니 끝나자마자 바로 극장을 나가 버린다. 난 화장실을 갔나 했는데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그 여성은 서태지의 뮤직 비디오를 보기 위해 돈을 내고 극장에 들어왔던 것이다. 허걱! 어차피 돈 내고 들어온 것이라면 영화라도 보고 나가지. 이 얘기를 다른 데서 했더니 혹시 그 여성이 앞 타임 영화를 봤는데 조금 늦어 앞부분을 못 봐서 그런 거 아닐까란 해석을 내 놓았다. 그런데 그럴 리 없었다. 왜냐면 난 1회-조조를 관람했기 때문이었다. 암튼 서태지 팬들 참.. 대단하다는....
※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 때문일까? 만화로 봤을 때는 누가 ‘친구’인지 밝혀지기 전까진 쉽게 알기 어려웠는데, 영화에선 쉽게 보인다. 나야 어차피 알고 있었던 것이고, 원작을 안 본 친구가 영화를 보고 나오더니, “혹시 누가 ‘친구’야?”라고 물어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딱 보이든데”....
※ 역시 일본 영화의 강점은 작고 소소한 일상을 다룬 영화들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일본 침몰>도 그랬지만 대형 블록버스터는 아무래도 힘에 부친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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