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끼는 건 괜찮다. 최소한 발전은 해야 되는 거 아닌가?... ★★
이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고서 1997년에 제작된 일본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일 터이다. 물론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는 라디오 드라마, 그 자체가 영화의 전체라고 한다면 <라듸오 데이즈>의 라디오 드라마는 영화의 일부분이라는 차이는 있다. 그래도 일부분이 그냥 일부분이 아니라 핵심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라듸오 데이즈>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자, 이런 기본 전제부터 확실히 <라듸오 데이즈>의 기획은 졸속이라는 게 드러난다. 일본 영화를 베껴다가 반일 정서가 담겨져 있는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물론 상대방의 것을 가져다가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서 경쟁할 수만 있다면 좋다. 문제는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베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은커녕 퇴보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는 내용이 연결이 안 되고 어처구니없는 설정들도 코미디니깐 이해 가능하지 않냐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 코미디는 설정상 과장 또는 도약 등의 비현실적 부분들이 인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소한 영화 내에서의 논리 구성은 나름 일관성을 유지하든가 최소한 영화에서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 도대체 불꽃만 터지면 잔뜩 뭔가 일어날 것이라고 내내 떠들어 대더니, 반일 운동의 상징인 듯 보였던 불꽃은 그저 경성 하늘을 밝히는 불꽃놀이, 영화 화면의 때깔을 그럴싸하게 만드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거다.
영화 속 라디오 드라마 <사랑의 불꽃>이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세부적 설정조차 따라했다는 걸 문제 삼을 힘도 없다. 왜냐면 그것마저도 문제 삼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문제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가 생방송 라디오 진행에 있어서 연기자의 욕심에 따른 극의 뒤엉킴이 자연스럽게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면 <라듸오 데이즈>의 그것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저 돌발적으로 발생하며 그로 인한 극의 뒤엉킴에 따른 긴장도도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듸오 데이즈>는 크게 두 축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하나는 로이드를 중심으로 하는 경성라디오 생방송 드라마이고 또 다른 하나는 K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운동과 관련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두 이야기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처럼 묘사되고는 있지만, 사실상 별 관련도 없으며, 독립운동은 그저 라디오 드라마를 빛내주기 위한 장치로 밖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굳이 장치적 역할에 국한할 것이라면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꼭 독립운동이 다루어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영화에서 나름 재미가 있었던 건 현재 우리나라 대중문화, 특히 TV 드라마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풍자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라듸오 데이즈>가 괜스레 여기저기 발을 걸치며 얘기를 분산시키지 말고 차라리 이 부분에 좀 더 집중했더라면 그나마 나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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