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유머로 포장된 오락 사극... ★★★
조선이 서양보다 300년이나 앞서 개발했다는 세계 최초의 다연발로켓인 신기전을 소재로 한 영화 <신기전>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무게감을 줄이는 대신 가벼운 유머와 액션을 내세운 오락영화로서 어느 정도 충실하다. 때는 세종 30년인 1448년.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죽은 보부상단의 우두머리 설주(정재영)는 내금위장 창강(허준호)의 부탁을 받고 묘령의 여인 홍리(한은정)를 숨겨준다. 홍리는 세종의 명으로 신기전을 개발하던 도중 명나라 자객의 습격을 받아 죽은 아버지 대신 신기전 개발에 나서고, 명은 조선에게 신기전 개발을 중단하라는 압력을 행사한다. 한편, 신기전 개발에 부정적이던 설주는 홍리에 대한 애정과 창강이 내세운 파격적 조건을 받아들여 본격적으로 신기전 개발에 참여하게 되고, 명의 압력은 단순한 외교적 압박을 넘어 ‘이이제이’ 전법을 동원한 군사적 압박으로까지 확대된다.
<신기전>의 제작을 강우석 감독이 맡았다고 하면, 아마도 <한반도>가 자연스레 떠올려질 것이다. <한반도>에서 대통령을 맡았던 안성기가 이번에 세종을 연기한 것도 연결되는 지점이지만, 무엇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압력, 그것에 저항하는 지도자, 서로의 신념에 따라 입장이 나뉘는 관료들, 그리고 힘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서 후퇴하는 강대국까지 두 영화는 거의 겹친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렇게나 비슷한 두 영화를 보고 나서의 느낌은 꽤 다르다. 그건 <신기전>이 <한반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실패란 무엇일까? 그건 입장에 대한 강요와 웅변, 시종일관 진지함의 견지였다. 그럼으로써 관객은 마치 선생님으로부터 수업 받는 학생이 된 것처럼 불편하고 거북했었다. 아무리 옳은 입장도 강요하는 순간, 그건 즐기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일종의 역사수업이었던 것이다.
반면, <신기전> 역시 홍보에 과도한 민족주의를 부각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종일관 자잘한 유머로 무게감을 줄였고, 그래서인지 민족주의에 부정적인 내가 보기에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이건 그저 단순한 오락영화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소재가 소재이니만치 여기저기서 영화와 관련한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입장은 극단으로 나뉜다. 자랑스럽다는 의견도 있고, 과장된 역사왜곡이라는 의견도 있다. 왜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여기저기서 자료를 인용할 정도로 치열하다. 난, 약간은 냉소적 입장이다. 이게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조선시대 초기에 보여줬던 놀라운 과학기술(실제이든 아니든)이 이후 조선이라든가 현대 대한민국 발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성경이 성직자들의 지식독점을 깨트리고 르네상스를 불러온 1등 공신으로 역사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면, 그보다 앞선 우리의 금속활자 기술은 사회적인 파급력도 없었고 우리 내부 발전에 별다른 역할도 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현대에 계승되지도 못한 채 사라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신기전이 실제 존재했었는지 아니면 왜곡인지에 대한 문제보다 신기전이 그토록 자랑할 만한 우리의 문화유산인가 하는 점에 회의적이다. 신기전은 일종의 대량살상무기다. 다이너마이트나 핵의 개발 자체는 평화적 목적이었지만 엄청난 위력을 가진 무기로 거듭났고, 현재도 산업과 무기라는 양날의 특성을 동시 보유하고 있다. 반면에 신기전은 개발할 때부터 오로지 대량살상무기로 개발되었고 이후에도 무기로서만 존재하다가 사라져 버린 비운의 존재다. 대량살상무기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 많은 인명을 한 번에 끝장냈었다는 걸 굳이 자랑해야 하는 것일까. 신기전의 살상력보다는 3km나 날 수 있었다는 로켓 추진력에 대한 자랑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영화의 마지막 전투 장면은 <300>을 베껴도 너무 베꼈다. 거기에 신기전이 터져도 엎드리기만 하면 죽지 않는다니 홍리를 살리기 위한 묘수(?)임은 이해하지만, 완전 코미디였다.
※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말하자면 안성기는 솔직히 할 말 없고(너무 전형적이어서 싫증난다) 정재영이나 허준호의 연기는 좋았다. 특히 정재영은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유머까지 담당해 돋보이는 활약을 보인다. 비록 <강철중>이 떠오르긴 해도. 문제는 한은정이다. 한은정의 연기가 아주 나쁜 건 아니었지만, 짧은 대사인 경우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대사가 좀 길어지면 어색해지고 꼬인다. 기본적인 발성 연습이 더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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