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질감의 흑백 버전.....
내가 지금까지 구입한 DVD 목록을 쭉 살펴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 일관성 없는 구입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단한 걸작이어서 꼭 보관해야 할 작품만 있는 것도 아니고, 부록이 빠방한 작품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의 작품이기 때문도 아닌 것 같다. 대부분은 갑작스런 충동에 따른 구매였다. 이래서야 어디 컬렉션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요즘 일요일에 방영되는 MBC TV <출발! 비디오 여행>에는 매주 새로 나온 한국 영화 DVD에 실려 있는 배우, 감독 코멘터리를 소개해 준다. 분명, 거의 죽어버린 부가판권 시장에 대한 고려 때문일 텐데, 난 오히려 그걸 보면서 DVD 구매 욕구가 떨어짐을 느낀다. 감독하고 배우가 앉아 그 따위 농담 따먹기나 하려면 뭐하러 코멘터리를 실어 놓았나 싶다. 일반인 중에서 DVD를 구매할 정도면 분명 그 영화에 애정이 있고, 영화에 대한 깊은 정보를 알고 싶은 사람일 게다. 그 사람들이 감독, 배우들이 둘러 앉아 촬영 당시의 후일담 같은 농담 따먹는 얘기나 듣고 싶어 DVD를 구입할까? 물론 부록에 그것만 담겨 있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DVD 홍보 포인트를 잘못 잡은 건 아닌가 싶다.
아무튼 가장 최근 <미스트>를 DVD로 구입했다. <미스트>를 구입한 건 순전히 흑백 버전의 영화가 실려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참 독특한 구성이다. 왜 굳이 흑백 버전을 실어 놨을까? <미스트>는 가장 잘 하는 게 스티븐 킹 원작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라는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쇼생크 탈출>, <그린마일>에 이어 세 번째로 만든 스티븐 킹 원작 영화이며, 마지막 장면으로 인해 호불호가 확연히 갈렸던 영화이기도 하다. 어떤 평론가는 ‘10년이 지나도 도저히 잊지 못할 결론’이라며 극찬했고, 나 같은 경우는 정신적 공황 상태를 경험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반면에 ‘괜히 봤다’, ‘이게 뭐야’라는 식의 격렬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았다.
일각에선 <미스트>를 블록버스터 괴수영화로 알고 있기도 하든데, <미스트>는 1,700만 달러의 비교적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상영시간 내내 깔려 있는 자욱한 안개는 저렴한 예산이 가능하게 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 괴수 영화가 아니라,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반응을 세밀하게 잡아내고, 진지한 철학적 주제를 던져주고 있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과 스티븐 킹이 컬러 버전보다 더 선호해서 컬러 대신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는 <미스트> 흑백 버전은 실제 보지 않고서는 그 느낌을 알기 힘들다. 나도 보기 전엔 특별히 다른 게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대하고 보니 마치 오래된 고전 몬스터 영화를 보는 느낌이며, 컬러에 비해 비현실적, 초현실적 분위기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미스트> 컬러버전을 보고 만족한 사람이라면 흑백버전에도 분명히 만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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