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하하하하... 이거 정말 물건인 걸... ★★★☆
쿠엔틴 타란티노,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그라인드하우스> 또는 주성치의 영화들, 그리고 데이비드 주커의 코미디 영화들은 취향에 맞으면 천국이지만 취향에 맞지 않으면 지옥이 따로 없다. 그만큼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는 영화들이다. 뻔뻔하고 노골적인 B급 감성으로 무장한 <다찌마와리> 역시 비슷한 범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다찌마와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2000년 인터넷에 공개되어 조회수 120만을 넘김으로써 류승완 감독이 농담 삼아 자신의 최고 히트작이라고 일컫기도 하는 단편 <다찌마와리>의 극장 개봉용 확장판이다.
<다찌마와리>의 제일 두드러지는 특징이라면 단연코 배우들이 뻔뻔스럽게 늘어놓는 언어의 유희다. 100% 문어체로 구사되는 대화들은 마치 인터넷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만화 <메가쑈킹>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하나 하나 뜯어 놓고 보면 정말 구구절절 명문장들이다(?) ‘조국과의 사랑을 배신한 그대는 간통녀’, ‘당신은 내 마음의 세입자’, ‘내 너를 사고 싶다. 얼마면 되겠니? 에누리는 않겠다’ 등등등. 그런데 지금 들으면 그 자체로 코미디인 이런 식의 문어체 문장은 60~70년대 한국 영화에선 일반적인 대사 방식이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지금도 코미디에서 자주 사용되는 ‘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보는 군’ 뭐 이런 식의 대사들. 그리고 모든 대사는 100% 후시 녹음이다. 이 후시 녹음의 특징은 배우의 말이 마치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인데, 연기자 중 후시 녹음의 진미를 가장 잘 살리고 있는 건 류승범인 것 같다. 이를테면 실제로는 쓰러지는 장면에서 신음소리 외에는 내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리고 그게 리얼할텐데) 후시 녹음을 하면서 ‘어이쿠야, 너무 아프구나’ ㅋㅋㅋㅋ.. 이런 식의 과장된 대사들로 화면을 장식한다.
영화를 장식하는 100% 후시 녹음된 문어체 대사는 하는 사람들이 진지하면 할수록 보는 관객은 웃음이 터지기 마련이다. 사실 자신은 진지한데 보는 사람은 아닌 경우만큼 웃긴 건 없는 것 같다. 반대로 유희를 유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지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70년대에는 진지했는데, 지금은 코미디다. 그래서일까? 2MB의 모든 통치 행위는 인터넷에선 유희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문제는 코미디를 하는 당사자는 그게 코미디인지 모른다는 사실이고, 더욱 문제인 건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다방면에 끼치는 해악이 매우 크며 보는 사람은 짜증지수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뭐 설마하니 류승완 감독이 이런 걸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설마??? - 여기서 설마란 일본의 한 요정 이름이다) 그냥 웃으며 즐기자고요.
대사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으로 빼놓을 수 없는 건 중국어, 일본어, 영어가 난무하는데 통역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도대체 내가 몇 개 국어를 알아듣는 거야??? 그냥 들어도 알만한데 굳이 정제된 자막을 내보낸다. 그것도 모자라 다운로드 영화에 대한 풍자도 빼놓지 않는다. ‘제 첫 자막입니다.’ ‘말이 너무 빨라서 죄송합니다.’ ‘이 영화를 ~~에게 바칩니다’ ㅋㅋㅋ.. 나라면 ‘이 부분은 대충 ~~~한 얘깁니다’도 한 번 넣었을 텐데.
2000년의 단편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건 무엇일까? 기본적인 형식이나 토대는 동일하지만, 주인공 다찌마와리는 동네 건달을 상대하는 호남 정도에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007 뺨치는 활약을 펼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특수요원으로 성장했다. 아니라는 게 티가 나는데도 뻔뻔스럽게 그렇다고 우기면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이 극악무도한 놈들. (누가?) <다찌마와리>는 베이징, 일본, 만주, 두만강, 흑룡강, 압록강, 스위스, 미국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과연 어디에서 촬영했을까? 차가 지나다니는 성수대교가 보이는데도 화면에 두만강, 흑룡강, 압록강이라는 커다란 글자를 보여주고는 그렇다고 믿으란다. 그 강변에서 김구 선생과 김좌진 장군처럼 보이는 두 사람은 내내 사자성어를 가지고 논다. 마치 중학교 저학년용 영어 카세트 테잎을 틀어놓은 듯한 대화가 들리는 미국 프린스턴대는 동국대, 옷을 썰매삼아 시원한 액션을 선보이는 스위스의 설원은 바로 용평스키장이다. 여기에 스위스 비밀은행 축협지점이 등장하고, 열차 내부 장면은 전라도 곡성에 있는 열차마을에서 찍은 관계로 창밖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실제로 달리지 않는 기차라고) 당연하게 만주 장면도 영종도 공항 인근에서 촬영한 것이고, 따라서 마적단은 말 대신 두 발로 그냥 뛴다.
또 하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재미는 노골적인 패러디 장면들이다. 좋게는 오마주 장면. 진상8호가 죽을 때 콧물, 침을 마구 흘려대는 다찌마와리의 모습에서 주성치가 떠오르는 건 당연하고, 일부러 다찌마와리의 팔을 밟아 외팔이로 만들어 놓고는 <서극의 칼>을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전개한다.
시종일관 뻔뻔하고 노골적인 B급 감성을 드러내는 <다찌마와리>가 아쉬운 건 영화의 중간 정도에서 호흡 조절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점과 공효진의 어색한 (정말 어색한) 어투다. 다찌마와리가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고 이름 모를 소녀(황보라)의 도움을 받아 지내는 그 부분은 전체적으로 처지고 늘어지며, 지루하게 진행된다. 얘기 자체도 늘어지는데, 황보라의 어눌한 어투는 지루함을 더욱 증폭시킨다. 임원희의 말에 의하면 황보라 본인의 말투가 훨씬 좋은 것 같은데, 왜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후시녹음을 했는지 모르겠단다. 실제 황보라의 후시 녹음이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다른 성우에 의해 녹음된 목소리는 정말 아니다. 그리고 예상 외로 출연 분량이 적은 공효진의 후시 녹음은 다른 배우와 비교해 톤과 분위기에서 겉돈다. 오히려 공효진의 경우가 전문 성우에 의한 녹음이 필요했던 거 아닌가 생각이 든다. 혹시 미래 처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독이 배려한 건 아닌지. 그리고 가끔 배경음악에 묻혀 배우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건 한국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대체 뭐가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장비가 문제면 장비를 보완하고, 배우가 문제면 발성연습이라도 시켜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게 해 달라. 아니면 자막이라도 깔아주든가.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웃자고 만든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실망했다는 네티즌의 글 중에는 ‘시대는 일제시대라면서 다리에 요즘 차가 지나다니더라고요. 근데 그게 무슨 두만강이에요. 영화를 만들려면 그런 거 실수 안하게 만들어야죠. 너무 티나요’... 이런 식의 리뷰들이 보인다. 솔직히 이 정도면 할 말 없어진다. 얼마 전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녹화 방송되는 개그콘서트의 닥터피쉬를 보며 ‘세상에 저러는 가수가 어딨냐’라면서 진지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혹시 동일인 아니신지. 뻔히 웃자고 하는 농담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것만큼 멋쩍은 건 없다. 이래서 2008년 한국의 키워드는 ‘소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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