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미스 다이어리> 이후로 예지원은 정말 많은 인지도를 얻었다.
서른이 넘은 노처녀의 모든 것이 오직 궁상스러움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미자'라는 역을 통해 모두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의 '유진'이라는 역도 역시나
<올드 미스 다이어리> '미자'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만 같았다.
술만 먹었다하면 막장 레이스를 펼치며 종국에는 필름 끊김의 현상까지
보여주는 중독만 아니지 이미 알콜중독의 경지에 이른 노처녀, 유진.
회사에서도 짤리고 만년친구인 철진의 등골을 빼먹으며 그럭저럭 살던 어느날
친구들의 호출에 불려나간 술자리에서 평소처럼 죽음의 음주 레이스를 펼치다
다음날 호텔 스위트룸에서 전라로 깨어나 자신의 덮친(?) 그 누군가가 주문한
고가의 와인 샤또마고(대략 일병 백만원)의 계산까지 뒤집어쓰고 만다.
해서 시작된 그녀의 그날 밤 일 추적. 용의선상에 오른 남자들이 하나 하나 혐의를
벗어감에 따라 수사망은 점점 좁혀들어간다.
이 영화에서 모든 원흉은 '술'이다. 그녀는 너무 술을 좋아했고 죽어라 마셨다.
'술'때문에 매번 인생이 꼬이고 그런 그녀를 걱정해주는 것은 베스트 프렌드
철진(탁재훈 분)밖에는 없다.
'미자'는 노처녀의 모든 것을 보여준 것만 같았지만 사실은 그건 '공중파용'일 뿐이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유진'은 모든 올드 미스의 삶이 '미자'처럼 알콩달콩하게
혹은 약간은 주책스럽지만 결국에는 로맨틱하게 풀려버리는 동화는 아니란 걸 알려준다.
그녀는 어디서나 민폐고 진상이다. 그래도 최후의 피신처, 최후의 동화적인 요소는 존재한다.
바로 그런 그녀의 곁을 있는 듯 없는 듯 주구장창 지켜온 순정남, 철진이다.
내용상으로는 뭐 일단은 약간 반전...흠, 그것보단 결말이 조금 민감한 문제이니까 이대로
패스하는 게 좋은 듯 싶다. 이 영화는 '굉장히 웃길 것 같다'는 내 초반 기대와는 다르게
실상 굉장히 아마추어적이었다. 지루해서 죽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분명 지나치게 씬을
길게 끌어가는 느낌이랄까. 이건 뭐 편집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정쩡하게 늘어지고 튀는 씬이 많았다. 꼭 필요없을 것만 같은 군더더기도 많았다.
또한 로맨틱 코미디의 느낌을 위해 군데군데 등장하는 유머는 뭐랄까 좀 산만했다.
몇 명의 부수적인 캐릭터에게 웃음의 포인트를 주고 그들에게 그것을 이끌어나가게 해주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이 영화는 자잘한 농담같은 웃음이 여기저기 미세하게 터진다.
웃는 사람만 웃고 나머지는 '뭐지?'라고 생각할 만한 것들이 많았다. 게다가 대부분은 예지원의
처량한? 엉뚱한? 등등의 오버액션으로 땜질을 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미자'만큼 사랑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조금은 억지스럽기까지 했다. 그 많은 동창과 친구들은
그야말로 대사있는 엑스트라 같은 신세였고 말만 공동주연이지 탁재훈 역시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에서 연인으로의 스토리가 아무리 많이 우려먹어진 레파토리라지만
대사까지 어디서 들어본 것 투성이이면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
게다가 탁재훈의 두번째 진지한 역은 뭐랄까 조금 미흡했다. 물론 내가 예능에서의 웃기는
탁재훈에 대한 잔상을 너무 많이 가진 탓일 수도 있지만 (그도 그런 것을 계산하고 연기를
했을 거라고 보기에) 그래도 미흡했다. 진지하게 대사를 하는 모습이 꽤 어색했고 거기에
대사를 치는 것이나 클로즈업에서의 표정이나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많이 났다. 자연스러운
연기보다는 연기를 하기 위한 연기같은 모습이랄까? 나는 탁재훈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그가 예능인이라는 사실만으로 그의 연기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확실히 좀 어색했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미숙하다. 화면도, 편집도, 구성도...심지어는 배우의 연기도...
그래서 그 설익은 느낌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 웃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크게
우스운 것도 없었고 로맨스가 없던 것도 아니지만 그게 그렇게 사랑스럽지는 않았다.
이게 내가 이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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