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와 한국축구의 공통점은 문전처리 미숙....★★★
예전 기사를 보니, 처음 이 영화에는 오광록, 권오중 등 나름 비중 있는 조역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어쩌면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을 만들려던 계획이 <히트>와 같은 두 남성을 중심으로 한 영화로 바뀌었고, 따라서 연기자도 대거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두 남성을 중심으로 한 액션 영화는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을 합쳐도 넘쳐 날만큼 많은 게 사실이고, 그럼에도 꾸준히 제작된다는 현실은 그러한 구도가 주는 흥행성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대단한 고학력자의 수재가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되는 기사가 가끔 지면을 장식하는 경우가 있다. 현실에서라면 그런 범죄의 대부분은 혼인빙자간음이라거나 사기 정도인 경우가 많지만, 영화라면 다르다. MBA 출신에 모델을 뺨칠 정도의 외모를 자랑하는 안현민이 팀을 만들어 현금 수송 차량을 털고, 밀수되는 금을 가로채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굳이 그 범죄에 경찰에서도 가장 독종이라는 백성찬 반장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 이 영화의 초반을 끌고 가는 스토리적 재미는 이 두 가지를 축으로 만들어진다. 범죄의 이유와 백성찬의 존재 이유.
백성찬 반장은 사건 초기부터 이 사건이 자신이 구속하려던 김현태(송영창)와 연관된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다. 아니, 당연히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길거리에서 강탈당한 현금도 김현태의 것이고, 제주도에서 사라진 금도 김현태의 것이다. 그럼 김현태란 인물은 누구인가? 악덕 중의 악덕 자본가로 나오는 김현태는 영화에서 처음 소개되는 순간, 영화의 매력을 반쯤은 갉아 먹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왜? 보자마자 나쁜 놈이라는 게 티가 너무 나거든. (그 점에서 병원에서의 에피소드는 완전 사족이었다. 나쁜 놈이라는 걸 강조하다보니 오히려 코믹 캐릭터가 되어 버린 김현태) 그것도 송영창 정도의 배우가 연기하는 악역이라면 <눈눈이이>의 악역은 안현민이 아니라 김현태라고 고정되고 이때부터 영화는 백성찬 대 안현민의 구도가 아니라 백성찬/안현민 대 김현태의 구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백성찬과 안현민의 대립구도에서 만들어 져야 할 긴장감은 느슨해져 버린다. 영화의 구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샴페인이 너무 빨리 터졌다는 느낌을 영화 보는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만약 김현태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모호하게 처리되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실체를 드러내는 방식이었다면 어땠을까?
영화의 중반 정도에 와서 안현민의 모든 인적 사항이 공개되고, 왜 이런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가 밝혀지자 자동적으로 백성찬을 왜 끌어 들였는지도 자동적으로 추출된다. 즉, 영화가 시작하면서 관객을 궁금하게 했던 두 가지가 모두 밝혀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백성찬을 어떻게 최후 심판장의 해결사로 세울 것인가가 영화가 줄 수 있는 마지막 결정타로 남게 되었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도 아니고, 어떤 대안을 제시할 정도의 능력도 없지만, 영화를 보면서 천재 안현민의 기막힌 시나리오에 의해 백성찬이 자기도 모르게 희대의 악덕 자본가를 검거하는 영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러한 방식도 헐리웃 영화를 통해 익숙한 방식이긴 하지만, 안현민과 백성찬이 미리 공모하는 방식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그런데 영화는 기어이 둘이 직접 만나 이야기하게 만든다.
영상의 힘이 아니라 사진의 힘 때문이기는 하지만, <눈눈이이>는 확실히 스타일리스트하긴 하다. 범죄 장면에서의 빠르고 현란한 편집이라든가 두 차례의 도심 카체이싱 장면도 헐리웃 블록버스터와 직접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서울이라는 현실적 공간을 고려해 보면 나름 쾌감을 선사한다. 쓸 데 없이 가족이야기라든가 주위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주제에 집중하는 것도 범죄 영화/액션 영화로서 합격점을 줄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구타유발자들>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평소 부하직원들에게도 존댓말을 쓸 정도로 예의를 차리는 듯하다가 갑자기 또라이로 돌변하는 한석규를 대표로 해서 배우들의 연기도 기본은 한다.(이 영화는 주요한 배역을 제외하고는 연기를 논하기 곤란할 정도로 존재감을 부여하지 않는다. 안현민 팀 중에서도 정인기나 TV 드라마에 나왔던 김지석 정도만이 대사다운 대사를 한다) 천재라는 안현민 일당의 범죄 계획이 생각보다 단순하긴 해도 영화적 재미를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 최소한 영화를 보고 나서 ‘괜히 봤다’라든가 ‘돈 아깝다’ 정도의 혹평을 받을 영화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백성찬과 안현민이 직접 만나는 순간부터, 정확하게는 백성찬이 안현민에게 향후 계획을 알려주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갑자기 축축 늘어진다.
그 때부터 영화는 헛발질의 연속이다. 김현태가 범죄 현장에서 느닷없이 자신의 심복을 죽이려 하는 것도 너무 억지스럽고, 천재라는 안현민의 계획이란 것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하고 허술하다. 그 정도 거대한 거래 현장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출동한 경찰이 늦게 도착한다는 것도 고루한 장르적 클리셰라고 할 수 있다. 곽경택 감독 인터뷰에 보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마지막 백성찬이 운전하는 차에 안현민이 잡혀가는 장면이라고 한다. 둘이 아무 말 없이 한 동안 가는 장면은 그 자체 만으로만 보면 꽤 괜찮다. 온갖 별의별 생각을 하고 있을 둘의 표정은 보는 것만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이 부분은 별개의 영화로 느껴질 정도로 이질적이다. 마치 액션 영화의 마지막에 엉뚱하게 <마이클 클레이튼>의 엔딩 장면을 넣은 듯한 느낌.
개인적으로 곽경택 감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곽경택 감독은 자신이 직접 경험했거나 잘 아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때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만들 때의 퀄리티 차이가 많이 나는 감독이다. 이런 면에서 결코 좋은 연출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태풍>으로 크게 뒤통수를 맞은 이후로 곽경택 감독의 작품이라면 좀 꺼려지게 되었다. 만약 영화를 보겠다는 사람이 곽경택 감독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굳이 찾아서까지, 시간내서까지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