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굉장히 고민했었다.
원래 영화를 보기로 하면 그 영화 리뷰를 안보고 가는 편이지만
어찌어찌하다 [놈.놈.놈]의 뜨거운 인기덕에 먼저 리뷰들을 훑게 되었다.
하지만 의견은 너무 분분했다. 내용이 없어서 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별로였다. 아니면 스토리 없이도 재미만 있더라...등등.
그래서 이거 좋은 영화라는 거? 나쁜 영화라는 거? 이상한 영화라는 거?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고심을 했다. 결국 가족들과 단란하게 보러갔다.
그리고 나는 결국 '스토리는 너무나 심플하지만 재밌었다'에 손을 들어줬다.
김지운 감독의 전작들은 모두 내 영화목록에서는 좋아하는 영화들에 든다.
특히나 [달콤한 인생]은 내가 배우 이병헌을 새로운 인물로 인식하는데 엄청나게
공헌을 한 영화이기도 하다. [장화, 홍련]은 아주 짜임새 있는 공포영화는
아닐 지언정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으로 내 마음속에 자리해있다.
때문에 배우 이병헌의 출연과 감독 김지운이라는 것에 나는 끌렸었다.
캐스팅 끝나고 제작 들어간다며 시놉이 돌자마자 봐야지 하고 결심을 했었다.
그리고 내 결정은 적어도 나에게는 옳았다.
나는 배우 이병헌의 눈을 참 좋아한다. 그 눈은 항상 촉촉하게 젖어있고
늘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빛을 띠고 있다. 그래서 지독하게 나쁜 놈, 박창이역을
맡아도 그는 여전히 이유있고 나름 선량하고 순수할 정도로 맹목적으로 보인다.
검은 정장과 코트자락을 길게 휘날리며 시니컬한 다크서클과 한쪽눈을 가린 흑발의
그는 악의 상징으로서 완벽한 외형을 자랑했다. 연기 또한 그에 걸맞았다.
특히나 '최고'라는 위치에 목숨을 걸어대는 단순함은 순수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비웃음, 분노, 때에 따라서는 슬픔 비슷한 것이 하나 하나 창이 그 자체다.
좋은 놈, 도원역의 정우성...뭐, 상대적으로 좋은 놈이라는 소리이지 절대로
정우성이 완전 선인이나 엄청난 영웅인 것은 아니다. 창이가 '최고'가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한 필연적인 복수를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든다면은
도원은 현실적인 이유인 돈과 개인적인 이유인 결투 둘 다를 위해서 달려든다.
하지만 강한 자에 대한 도전 의식과 그에 상응하는 무모함은 창이 못지않다.
근데 솔직히 정우성이 이 영화에 꼭 나와야하는 건지는 의문이었다.
악역 창이와 이상한 놈이자 그만큼 대단한 놈인 태구(송강호 분) 사이에 낀
어정쩡한 놈...같았다고나 할까??? 솔직히 없어도 그럭저럭 영화는 굴러갔을 듯.
마지막...역시 제목 뒤에 나오는 놈은 뭔가 있다라는 걸 보여주는 이상한 놈, 윤태구.
만주 귀시장에서 훔친 장물을 팔아 살아가는 삼류 열차털이범이다.
어찌어찌 간도행 기차를 털었다가 이 영화에 나오는 모두의 초미의 관심사인
문제의 지도를 갖게 되면서 인생이 더 꼬이기 시작하는 인물이다.
창이나 도원과는 다르게 특정한 개인의 원대한 목표따위는 없고 오로지
돈을 모아 노파(엄마인지는 잘 모르겠음)와 둘이 오순도순 가축들을 키우며
살아가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단순하고 무식하지만 생명줄 하나는 기깔나게 길다.
임기응변에 강해서 크게 다치거나 죽음의 문턱까지 가거나 하지도 않는다.
흔히들 말하는 가늘고 길게 사는 놈의 전형이다. [놈.놈.놈]에서 보여지는 코믹한 요소는
모두 이 윤태구라는 인물로부터 출발한다. 총알을 피한다며 종종거리는 모습,
되지도 않는 변명을 주절거리는 모습, 자기는 진지한데 남보기엔 헐렁한 모습들이
참으로 볼거리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사는 게 엄청 신기하고 대단하다.
일본군, 독립군...뭐, 이런 게 나오기는 하지만 사실 크게 의미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제목에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하고 써놓아도 영화를 보면 그게 그 놈이듯이.
좋은 놈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앞장서는 것도 아니요. 이상한 놈이 알고보면 영웅인
이야기도 아니다. 세상에 모든 일에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듯 이 영화의 결말도 보고나면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내가 그 상황이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당사자도 그렇지 않듯이 시시한 이유로 시작된 혈투도 혈투는 혈투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고 나도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감독 김지운의 영상에 대한
시각이다.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에서는 정적이면서도 미스테리한 기운을 주면서
동시에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그에 걸맞는 음향효과를 들려줬다면 [놈.놈.놈]은 보다
역동적이고 맹렬한 움직임에 초점을 뒀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우성이 타잔처럼 줄을 타고
다니는 모습이나 이병헌이 단검을 사용할 때의 화면의 움직임. 특히나 귀시장의 좁고
복잡한 길에서 건물과 건물을 오가면서 이어지는 총격씬과 액션씬에서는 눈을 깜박이는
것도 아까울 지경이었다. 또한 칼을 맞은 사람에게서 뿜여져나오는 피가 화면 한귀퉁이
로 튀어오는 장면은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이면서도 반면에 엄청난 리얼리티를 느끼게
해줬다. 시종일관 이 놈 저 놈 싸우느라 바쁘고 귓가로 제일 많이 들려오는 소리는 끊임없는
총소리이다. 처음에는 귀가 아팠지만 너무 많이 들으니까 적응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이 영화가 스토리나 주제가 없다고 말을 하시는데...구지 찾자면
정우성이 말하는 대사에서 일정부분 그 답을 얻을 수가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무릎을 딱 치면서 기발하다고 느꼈던 점이 있는데 바로 영화 오프닝 주연배우의
이름이 나오는 부분에서 세명의 놈들을 새에 비유한 화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감동을 주기는 하지만 잘 만든 영화가 아닌 경우도 있듯 영상은 잘만든 영화지만
뚜렷한 감동이나 교훈을 주지 못하는 영화도 분명 존재한다.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만
있다면야 보는 관객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험이지만은 결국 영화를 만드는
것도 같은 인간으로 부족할 수 밖에 없는 것도 당연지사다.
나는 여지껏 내가 영화를 보는 방식인 '조금은 느긋하고, 융통성 있게'로 이 영화에
나름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나를 즐겁게 해주고 감탄하게 해주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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