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인가 많은 이들을 기다리게 했던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개봉했다. 칸 영화제에 상영되면서 호평을 받았다는 소식으로 기대감을 더 높여버린 <놈놈놈>.
매번 만드는 영화마다 다른 장르에 도전하는 김지운 감독. 코미디, 공포, 드라마, 느와르에 이어 이번엔 웨스턴 무비다. 웨스턴 무비라 함은 요즘은 헐리웃에서도 드문 장르이지만 20세기 중후반에는 상당한 인기를 얻었던 장르이다. 미국의 개척시대 서부 사막지대에 일명 '건맨'들의 이야기를 그린 뭐 그런 영화가 보통 웨스턴 무비로 불린다. 대표적 인물로 스파게티 웨스턴 무비의 창시자로 불리는 '세르지오 레오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있겠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를 감독했는데, 이 영화가 바로 <놈놈놈>을 있게 한 영화가 되겠다.
개봉 첫날 전국 700여개 상영관에서 40만명을 동원하며 시작된 흥행예고. 그 <놈놈놈>의 면면을 한번 살펴보자.
줄거리
『일제강점기의 만주. 보물지도로 알려진 지도를 가지고 있는 가네마루가 타고있는 기차에 기차강도 윤태구(송강호)와 만주의 악명높은 마적단 두목 박창이(이병헌), 그리고 독립군에게 청탁을 받은 현상금 사냥꾼 박도원(정우성)이 맞딱드린다. 이 세남자의 추격전과 대결이 시작되는 시작점이다.』
생각보다 내용은 단순하다. 지도 하나가지고 세남자가 싸우는 그런 내용이다. 심각할만한 내용은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거의 100% 상업영화로 제작된 듯 하다. 지난 김지운 감독의 영화와는 다르게 오락성이 다분하다. 어딘지 모르게 어드벤쳐물 냄새까지나는 시놉시스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도 웨스턴 영화라기 보다는 왠지 코미디영화 같았고, 액션 영화 같았다. 아니면 고추장 웨스턴?.
사실 김지운 감독이 영감을 얻었다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스파게티 웨스턴'의 창시자로 불린다. 세르지오 감독은 이탈리아 사람으로써 웨스턴 무비를 찍었다. 그러면서 미국 웨스턴 무비와는 다른 성향의 웨스턴 무비를 찍었는데, 세르지오 감독의 웨스턴 무비가 흥행하자 이탈리아의 대표적 음식인 '스파게티'를 붙여서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말을 만들어냈다. 그의 웨스턴 무비들은 다른 미국 웨스턴 무비와는 다른 유럽의 감성이 섞여있는데 그 점이 총질이 난무하고 터프한 그런 미국 웨스턴과는 차별되어서 성공한듯 하다. 그런면에서 김지운 감독도 <놈놈놈>을 연출하면서 상당한 영향을 받은 듯 하다.
좋은놈과 나쁜놈과 이상한놈은 사실 뚜렸한 구분이 없는듯하다. 누가 좋은놈이고 나쁜놈인지 잘 구분은 안간다. 뭐 이상한놈은 알겠지만. 셋다 이상한거 같기도 하고... 좋은놈이라고해서 선의 대표격 인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쁜놈이라고 해서 악의 대표격 인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좋은놈과 나쁜놈, 이상한놈은 세인물의 상대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겠다.
사실 재밌긴 한데 아쉬움이 남는다. 단순한 재미로만 따지자면 흥행에는 의심이 없다. 중간중간 약간씩의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금새 후끈달아오르게 하는게 있다. 그러면서 이상한놈의 캐릭터가워낙에 이상해서 간혹 이 영화가 코미디 영화인가라는 생각이 들게한다. 사실 이부분은 감독의 오버 연출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통 미국식 웨스턴을 표방한 것은 아니지만 이 이상한놈의 캐릭터를 너무 부각시켜 감독 본연의 의도가 조금은 뭍힌듯 싶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이 단순한 재미를 느끼게 하기엔 정말 좋은 부분이된다. 스탭들의 노고가 그대로 느껴지는 액션씬이나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라는 이 거물급 배우들의 출연만으로도 흥행의 조건은 다 갖췄다.
그렇다면 아쉬운 부분은 무엇인가. 하나는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감독의 의도가 뭍힐 수도 있는 캐릭터의 개성이다. 이상한놈의 캐릭터를 너무 부각시켜버려 너무 코믹적으로 가버리는 그런 분위기. 또 하나는 전체적 분위기다. 사실 <장화, 홍련>이나 <달콤한 인생>으로인해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스타일리쉬'다. 그렇기 때문에 세련되고 분위기있는 그런 웨스턴 무비를 기대했던 관객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부분은 그닥 보이지 않는다. 정우성과 이병헌의 캐릭터가 약간은 그런 기대감에 부흥하는 듯 하지만 그외에는 그런부분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은 내용이다. 100% 상업영화로 제작한 것이라면 내용은 별로 문제 될게 없다. 하지만 그간 김지운 감독이 보여준 영화의 뒤를 잇는 영화로는 내용이 부족했다. 별다른 메세지도 없고, 세남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만 영화내내 가득하다. 다시 말해 아쉬운 부분이란 그간 보여줬던 김지운식의 영화와는 다른 연출이 바로 아쉬운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아쉬운 부분은 앞으로의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긍정적 부분도 있다.
2시간13분이라는 약간 긴 러닝타임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중간중간 화려하고 박진감 있는 액션 씬은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웨스턴 무비를 표방하는 영화답게 영화내내 총질이 멈추질 않는다. 총질로 시작해서 총질로 끝난다. 하지만 단순무식한 총질이 아니라(물론 단순무식 총질도 있긴하지만) 휙휙날라다니면서 총을 쏜다. 이 부분은 옛 홍콩 느와르의 대부 윤발형님의 액션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액션장면 하일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사막의 대 추격씬이다. 정말 스탭들의 노고가 절실히 느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 드넓은 만주벌판을 달리는 일본군, 마적떼, 그리고 세남자. 그런데 사실 조금은 긴감이 있긴하다.
이 영화의 또 하나 주목할만 한 것이 캐스팅이다. 사실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의 캐스팅만으로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지만, 조연이나 단역들의 면모도 주목받을만하다. 박도원에게 청탁하는 독립군역에 엄지원, 아편장수에 손병호, 윤태구의 친구 만길역의 김승수, 극 초반과 막판에 잠깐씩 등장한 박서방역의 오달수, 만길의 친구이자 중국 도적단의 중간보스격인 병춘역의 윤제문, 그리고 사건의 발단이 되는 김판주역의 송영창, 박도원과 같이 지내는 송이역의 이청아 등이 화려한 조연, 단역 출연진을 수놓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가 많이 나와서 이 배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래도 이 조연, 단역 배우들때문에 주연배우들이 뭍힐 염려는 없다. 이 세명의 주연은 얼굴풀샷도 자주 잡혀가면서 화면을 꽉꽉 채워준다. 게다가 화려한 연기까지. 사실 정우성은 캐릭터때문인지 몰라도 조용조용하다. 그래서 크게 각인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이병헌이나 송강호는 상당히 튄다. 이병헌은 그 악의에 가득찬 눈빛을 내뿜으며 나쁜놈에 상당히 충실하고, 송강호는 그 화려한 입담과 행동으로 관객을 휘어잡는다. 역시 명불허전이다.
김지운 감독의 전작을 좋아했던 한명으로 아쉬움을 느꼈지만 너무 재밌게 봤기때문에 영화 보고 나오는 기분은 좋았다. 사실 <반칙왕>때와 <장화, 홍련>이나 <달콤한 인생>때의 연출도 상당히 다른 면이 있었지만 <장화 홍련>과 <달콤한 인생>이 너무 뇌리에 박혀있어서 이번은 아쉽게 느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한국형 웨스턴 무비라는 식으로 보고싶진 않다. 사실 웨스턴 무비란 장르가 미국 서부지역 무법자들의 시대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사람이 주인공인 웨스턴 무비는 웨스턴 무비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고추장 웨스턴'은 괜찮은 표현이긴 하다만, 이 영화는 그냥 웨스턴 형식을 차용한 액션 영화라고 보고싶다. 또 그렇게 보는게 맞지 않을까 한다. 사실 영화보면서 웨스턴이란 생각은 안들었다. 비슷하다면 사막 나오고, 말 나오고, 총질 나오는 정도.
뭐 여튼 즐겁게 봤다. 안좋은 평도 많이 나오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재밌게 봤으니 만족한다. 매 영화마다 다른 장르에 도전하는 김지운 감독. 그러면서 도전하는 장르마다 호평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다음 영화는 과연 어떤 것일지 기대가 된다. 음... 다음은 멜로? 아님 S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