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에피소드의 나열로 이루어진 거대한 예고편......★★☆
영화 <적벽대전>은 오우삼 감독의 평생 프로젝트이며, 엄청난 예산과 함께 동양 영화에서는 전체를 다 찍어 놓고 두 번에 나누어 개봉한 첫 사례라고 한다. <삼국지>를 안 읽어 본 사람이라도 내용을 알 정도로 <삼국지>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적벽대전이며, 적벽대전의 클라이맥스는 100만 조조군이 거의 궤멸하게 되는 동오의 연환지계이다. 적벽대전의 클라이맥스인 연환지계는 가을 또는 겨울에 개봉할 2편에 담겨져 있으며, 전편인 <적벽대전 : 거대한 전쟁의 시작>은 조조군이 적벽에 주둔하는 부분까지 담겨져 있다.
때는 위․촉․오 3국이 대립하던 서기 208년, 조조의 대군에 밀려 유비는 패배를 거듭한다. 이에 제갈공명은 동오의 손권을 찾아가 연합을 제안하고, 동시에 조조로부터도 연대를 제안 받은 손권이 고심하는 가운데, 제갈공명은 오의 군 통수권자라 할 수 있는 주유를 설득한다. 드디어 유비와 손권의 연대가 성사되고 촉-오 연합군은 적벽에서 조조의 대군과 맞서 결전을 준비한다.
영화 <적벽대전>은 <삼국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유비, 관우, 장비의 비중이 적은 반면, 손권, 제갈공명, 주유, 조자룡, 조조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단지 감독의 의도가 아니라 실제 <삼국지>의 적벽대전 부분도 이들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말이 좋아 촉-오 연합군이지, 실제 전쟁의 대부분은 오나라 군사를 중심으로 치러지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번다고, 유비군은 적벽대전 이후 패퇴하는 조조군을 급습하며 과실을 따먹는다. 이 때문에 책에선 주유가 열불이 터져 병을 앓게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어쨌거나 두 차례에 나눠 개봉할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오우삼 감독은 익히 알려져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영화에 구현한다. 장비의 장판교 전투, 유비 부인의 우물 투신 자살 및 유비의 아들을 구해 나오는 조자룡의 전투 장면, 손권을 설득하는 제갈공명의 재기, 주유와 제갈공명의 만남 등.
물론 오우삼 감독이 책을 화면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은 아니다. 장비가 장판교에서 단신으로 조조의 대군을 막아낸 것은 거울 등을 이용한 거대한 전투 장면으로, 제갈공명과 주유의 만남은 격한 토론에서 음악을 이용한 선문답으로 아름답게 재구성되었다. 오우삼 감독이 손 댄 것 중에서 조조의 동오 침략이 아름다운 주유 부인 소교 때문이라는 것은 가장 독특한 해석이랄 수 있다. 소교는 당시 동오에서 가장 아름다운 2명의 여인 중 한명으로 꼽혔다고 하며 다른 한 명은 바로 그녀의 언니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조가 서교에게 마음을 뒀다는 얘기는 주유를 전쟁에 끌어 들이기 위한 제갈공명의 책략이라는 것이 여러 삼국지 관련 서적의 해석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오우삼 감독은 제갈공명과 주유의 대립과 갈등보다는 아름다운 조화에 방점을 찍은 듯하다.(2편에선 변화될 것인 분명하지만) 그런데 실제로 주유는 처음부터 제갈공명과 대립하고 있었고, 여러 차례 죽이기 위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너무 뛰어나다는 게 이유였다. 살려 두게 되면 분명 후환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는데, 동오의 입장에서 주유의 예감은 들어맞은 셈이다. 거기에 주유가 촉이 점령한 지역을 거저먹기 위한 책략으로 제안한 손권의 누이와 유비의 결혼도 영화로만 보면 손권이 순수하게 제안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어쨌거나 영화가 그리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그 자체만 떼어 놓고 보면 볼거리도 풍부하고 시각적 쾌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그런 장면들이 영화에서 단순한 볼거리 이상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즉, 적벽대전으로 나아가는 도상에 통일성과 일관성으로 배치되어 적벽대전을 앞두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나열에 불과하며, 그저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것 이상의 감흥을 얻어 내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전투 장면의 볼거리들 - 예를 들면 말이 달려오다가 넘어지는 장면들도 자주 반복됨으로서 나중엔 시들해지며, 일편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팔괘진 장면에서의 어색한 CG도 관람 방해요소로 지적할 수 있다.
<적벽대전 : 거대한 전쟁의 시작>만 놓고 보면, 오우삼 감독이 도대체 뭘 말하려 하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아마 후편에도 삼국지에 나오는 여러 에피소드가 나열 - 조조군의 수군을 지휘하는 채모의 제거 작전, 제갈공명이 화살 10만 개를 구하는 장면, 노장군 황개를 이용한 고육지계, 제갈공명에 버금간다는 방통의 연환지계, 바람을 바꾸는 제갈공명의 기도 등 - 될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전편처럼 단순한 나열에 불과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전편만 놓고 보면 후편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만, 전쟁장면의 구현이라는 차원으로만 놓고 보면, 삼국지의 하이라이트인 적벽대전 장면은 빨리 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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