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 주어진 최고의 특혜는 영원히 지속될 듯한 시간이다. 일곱번 넘어져도 일곱번 일어나는 건 청춘의 패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스윙걸즈>의 소년, 소녀들을 키우는 것 역시 번듯한 악기나 연습실, 대의명분, 거창한 스승님의 교습이 아니다. “재즈, 한번 해볼까” 하는 호기심과 마음만 맞으면 모여서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무궁한 시간이 그들에게 주어진 전부다.
남고생들이 수중발레를 한다는 설정의 <워터 보이즈>를 감독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스윙걸즈>는 스윙은커녕 관악기를 부는 것조차 힘든 여고생들이 빅 밴드를 구성해서 스윙을 멋지게 연주한다는 줄거리다. 무더운 여름방학, 공부에 취미없던 여학생들은 합주부가 두고 간 도시락을 전해주는데, 도시락이 모두 상해 합주부는 식중독에 걸린다. 엉거주춤하게 살던 소녀들은 보충수업을 빼먹기 위해 합주부 대타를 자청하는데, 공교롭게도 합주부는 너무 빨리 학교로 돌아온다. 낙동강 오리알 처지가 된 소녀들은 어느새 자신들이 음악을 정말 즐겼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의 힘으로 빅 밴드 재즈를 연습한다.
중고 악기를 사기 위한 온갖 우여곡절은 즐거운 추억거리가 된다. 음악 때문에 겪는 당황스러움과 짜증을 포함한 모든 것이 소녀들에게는 즐거움이다. 연정으로 발전할지도 모르는 소년과의 찌릿한 눈빛 교환 역시 사랑의 성취 대신 짓궂은 장난으로 이어질 뿐이다(버섯을 따러 갔다가 멧돼지에게 쫓긴 소녀들이 정지화면으로 서 있는 장면에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깔리는 대목은, <스윙걸즈> 이후 제작된 <웰컴 투 동막골>의 특정 장면을 연상시킨다).
밴드의 존폐가 달린 막다른 순간마다 폭소를 이끌어내는 <스윙걸즈>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마지막 음악제 장면이 아니다. 소녀들이 호각 소리, 탁구치는 소리, 이불 두들겨 말리는 소리에서 재즈의 리듬을 발견할 때 그리고 폭설로 막힌 기차 안에서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음악을 연주할 때다. 소년, 소녀들이 음악제 연주를 마치고 한껏 웃어 보인다. 영화를 보던 관객도 그들과 함께 미소짓는다. 그게 <스윙걸즈>의 저항불가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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