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천일이라는 한정된 기간이 주는 느낌 때문인지 가련하고 불쌍한 순정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어제 영화 [천일의 스캔들]을 보고 나서야 천일의 앤이 그 유명한 헨리8세의 러브러브 스캔들의 주인공, 앤이라는 것을 알았다. 왕이 한 여자 때문에 조강지처를 버리고 배교하고 교황청과 맞섰다는 그 로맨스(기실은 왕권의 절대성을 강화키 위한 왕의 책략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결국 헨리8세는 정교일치의 제왕이 됐으니 말이다)
천일의 스캔들은 배우들(나탈리포트만, 스칼렛요한슨, 에릭 바나,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등등)의 면면과 스펙타클한 화면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였다.
앤이 궁중 권력 암투의 희생양에서 음모와 유혹의 주체(복종하면서 지배하는 법을 배워라. 그게 여자다)로 변신하는 중반부까지는 이런저런 휘황찬란한 시각적 쾌감과 더불어 지루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정점에 섰던 앤의 몰락이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다뤄지는 중반 이후 영화는 급속도로 매력을 잃고 지루해진다. 기왕에 끈적한 관능의 유혹(물론 이에 대칭되는 순진무구한 메리-스칼렛 요한슨-가 있다)을 소재로 했다면 서사의 클라이막스를 앤의 정점에 두고 관능과 유혹의 끝까지 끝까지 밀어 부쳤으면 짜릿했을텐데 말이지.
나탈리 포트만(은 영화 2/3까지만)과 스칼렛 요한슨은 과연 소리가 절로 나오는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 내 개인적인 취향은 자기 욕망에 충실한 팜므파탈, 나탈리 포트만이다^^ 두 여배우가 앤과 메리의 배역을 거꾸로 하여 연기하여도 굉장히 흥미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스칼렛 요한슨의 앤은 나탈리 포트만과는 다른 서늘한 관능의 매력을 보여 주지 않았을까? 워낙에 두 여배우의 투톱 무비여서 에릭 바나는 상대적으로 쫌 글타. <뮌헨>의 어둠 속에 고뇌하는 이미지를 반복하는데 쫌 생뚱맞다. 그보다는 훨씬 짧은 등장시간에도 불구하고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명배우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기품있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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