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기가 강해서 여자가 온 마을을 휘어잡은 마을. 이 마을에 강쇠라는 총각이 있었으니 이름과는 달리 남자구실 못하고 비실거리는 총각이었다. 속 빈 강정이라고 수모를 당하던 강쇠는 어느날 비밀스런 술을 ‘과하게’ 마시게 되고 그날로부터 강쇠의 삶은 물론 마을과 국가의 운까지 큰 ‘화’를 맡게 된다.
영화 <가루지기>는 거의 20년 만에 변강쇠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킨 작품이다. 이미 많이 활용됐던 캐릭터를 영화에 다시 등장시킨 이유는 영화를 보지 못했어도 익히 알고 있는 그 캐릭터의 원형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이 재시작의 단추를 제대로 꿰면 이 캐릭터를 살려서 시리즈를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짐작할 수 있는 이런 의도 때문인지 영화는 꽤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우선 변강쇠라는 캐릭터의 재설정을 위한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과장되고 가볍게 낙인 찍혀진 캐릭터의 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도 덕분인지 봉태규가 분한 변강쇠에서 이대근으로 대표되는 변강쇠의 이미지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외형도 다르긴 하지만 영화는 애써 변강쇠라는 캐릭터를 통해 웃음거리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형과 비교되며 뜻을 펴지 못하는 답답함과 숲속에 사는 처녀 달갱(김신아)에 대한 순정을 부각시켜 진지한 모습을 강조한다. 국운을 달리할 정도의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부분에서도 과장된 연기를 억제하는 모습은 새로운 변강쇠 만들기 노력의 결과다.
영화의 특명은 이전 변강쇠를 보지 못했어도 선입견을 갖고 있을 젊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었을 테다. 그래서 영화는 우리의 창과 무용을 도입하여 뮤지컬적인 요소를 담아냈다. 일부러 창과 무용에 장기를 지닌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이 부분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여기에 클래식 음악까지 곁들이며 ‘퓨전’ 트렌드도 담아내려고 애쓴다. 무엇보다도 전체적인 화면 톤이 밝고 선명한 것은 영화를 한층 경쾌하게 하는 장점이다. TV 브라운관을 통해 봤던 예고 영상과는 달리 스크린을 통해 투영되는 영상은 우리나라의 가을 풍경을 예쁘게 담아냈다. 이런 밝은 영상은 다소 어둡고 많이 재생된 비디오 영상처럼 선명하지 못한 이전 변강쇠의 느낌과 완벽하게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는다. 변강쇠의 진지한 면을 부각시키고 가벼움을 억누르는 사이 이 ‘가벼움’ 부분을 채우기 위해 조연 배우들이 너무 강해져 버렸다. 주연보다 조연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은 초반 양기보다 음기가 강한 마을 분위기를 느끼게 하기에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후반부 음과 양의 조화를 위해 변강쇠가 재물로 바쳐지고 그 과정에서 무기력한 남자들에 비해 인간미를 드러내는 여자들의 군무는 변강쇠라는 캐릭터의 노력을 압도해버린다. 덕분에 ‘음과 양의 조화’라는 주제는 부각됐지만 변강쇠라는 캐릭터는 심심해졌다.
이 주제의 부각 때문에 중반 이후부터 영화 전체가 무거워지고 다소 느슨해지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이는 변강쇠의 강한 남성으로의 변신 이후 잠시 빠른 전개를 보였던 전반부의 흐름을 끊는 듯한 느낌을 주고 변신 후에도 여전히 카리스마를 뿜어내지 못하는 변강쇠에 목소리 높이는 마을 아낙들만으로는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슈퍼히어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후반부에 변강쇠의 카리스마를 강하게 묘사했다면 영화가 더 힘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달갱이라는 인물도 마찬가지로 가뜩이나 대사도 없는데 너무 강한 조연들에 밀려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 후반에 강쇠가 재물로 바쳐지는 과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캐릭터이고 강쇠의 순정을 강조하는 캐릭터인 만큼 좀 더 생기 있게 그려지지 못한 점은 아쉽다.
사족이긴 하지만 음양의 조화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다소 무거워지는 것까지 감수했던 영화가 강쇠의 후손인 꼬마 아이들의 거침없는 파워쇼를 에필로그처럼 보여주며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양기의 존재를 부각하는 부분은 다소 이해 불가한 부분이다. 강쇠 캐릭터의 희화화를 경계했다면 끝까지 참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아쉬운 점들 때문에 속편을 암시하는 듯한 강쇠의 마지막 모습에도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그럭저럭’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어찌 됐든 우리의 토속적 캐릭터를 다시 영화에 등장시켰고 트렌드에 맞는 방식으로 캐릭터의 원형을 보여주려는 노력은 높이 사고 싶다. 이런 노력을 스크린을 통해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관객이 굳이 손해 볼 정도는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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