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티를 처음 만난 건 제 초등학교시절 하굣길에 있었던... 지금은 없어진 동네 극장에서였습니다. 몇 학년 때였는지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올해가 [E.T.]가 태어난 지 20년째라는 걸 봐서는 상당히 어렸을 때였나 봅니다. 지금 저희 어머니가 아시면 황당해 하시겠지만 그 시절 전 어머니가 과자 사먹으라고 주신 돈을 모았 다가 가끔씩 그 극장에 가곤 했습니다. 저희 집엔 아직 비디오가 없었기 때문에 텔레비전의〈명화극장〉아니면 영화는 극장에서밖에 못 봤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 허름한 극장에 잘도 들어가서 앉아 있던 겁 없는 아이였죠. 지금으로선 택도 없는 일이겠지만 그 극장 아저씨는 특별히 미성년자 관람불가영화만 아니면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다 보게 해주셨답니다~. ^^*
사실 영화 [E.T.]와의 만남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바였습니다. 뭐였는지 기억 안 나지만 다른 영화를 보러갔었는데 동시상영으로 이걸 했거든요. 그때 오빠가 막 창간된 영화 잡지를 사오던 덕분에 집에 있는 책을 뜻도 모르면서도 그냥 읽고는 했었는데 그 책에서 이 영화에 대해 외계인이 나온다고 했던 것만 어렴풋이 떠올린 저 는 그냥 별 생각 없이 의자에 앉아있었죠. 그런데 좀 무거운 느낌 의 음악이 깔리더니 어두운 숲에 이상한 물체가 마구 뛰어다니는 겁니다. 사실 엘리엇과 이티가 만나기 전까지 전 이 영화가 공포영 화인줄 알았었죠. 〈전설의 고향〉도 옷걸이 뒤에 숨던 저이기에 여차하면 뛰어나갈 자세로 가방을 끌어안고 앉아 있었습니다.
잠깐 공포에 질렸던 순간이 지나고 엘리엇과 외계 생명체간에 의사 소통이 진행되는 걸 보고 있자니 마치 이티도 엘리엇도 제 친구처 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끝날 때까지 푹~~ 빠져서 정신없이 영화를 봤구요. 나중엔 아이들과 이티의 순수한 우정을 이해 못 하고 하얀 우주복 입고 나타나서 총까지 들고 쫓아다니는 어른들이 더 무서웠습니다. 이티가 떠날 때 내 친구가 전학이라도 가는 것처 럼 어찌나 슬펐던지... 엘리엇이 이티를 태우고 달 위로 날아가던 장면은 한동안 제 일생의 가장 큰 소원이었습니다. 정말 환상 그 자체였으니까요. 물론 과학적으로 자전거 타고 하늘을 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고 망상은 곧 깨어나야 했지만...
한동안 전 외계인을 만날 수만 있다면 나도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 해리 포터 시리 즈를 읽고 마법학교에 대한 꿈을 꾸는 것처럼요. 지금 생각하면 참 성심성의껏 영화를 보던 시절이었죠. 그 이후로 비디오나 텔레비전 으로도 다시 안 봤던 [E.T.]를 며칠 전에 다시 보러 극장에 가며 솔직히 전 어린 시절의 추억만이라도 남겨두기 위해 가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닐까 망설임 반, 어린 시절 제 느낌을 확인하고 싶은 마 음 반이었습니다. 극장에 들어가는데 괜히 조금 초조해지더군요. 만약 이제 어른이 된 내 눈에 이 영화가 유치하게 느껴진다면 난 어떤 추억을 남겨야할까..........
다시 본 [E.T.] 어땠냐고요? 다른 사람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여 전히 즐겁고 순수한 친구를 다시 만난 기쁨과 어른이 되어버린 저 에 비해 화면 속에서 여전히 어리고 순진한 그들의 모습 때문에 서 글픔이 반반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돈에 현혹되어 순수했던 이티를 디지털로 장식해 쇼핑몰 크리스마스트리로 만들어 버렸다며 슬퍼하 셨지만 전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행복함을 느꼈습니 다. 2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저렇게 매끄럽다니... 단점도 많지만 역 시나 이런 게 바로 스필버그의 힘인가 싶었어요. 어린시절 그 동네 극장에서의 추억 때문에 미소를 지을 수 있던 그 짧은 순간이 [E.T.]가 저에게 남겨주고 간 선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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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e65
추억 때문에 미소를 지을 수 있던 그 짧은 순간이 [E.T.]가 저에게 남겨주고 간 선물이랍니다.
2010-08-1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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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2002, E.T. The Extra-Terrestrial : The 20th Anniversary)
제작사 : Universal Pictures / 배급사 : UPI 코리아
수입사 : UPI 코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