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있음(영화의 결말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그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대표적으로는 이성적이고 합리적 대응과 비이성적이고 종교적, 관념적 대응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두 번째 영화를 본 지금도 그 이야기가 중요한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다. 다만, 거기에 덧붙여 <미스트>는 이성적 결정에 대한 도발적 질문을 담고 있다.
“이런 파국을 맞이하고서도 여전히 이성적 판단, 합리적 판단이 중요한 것인가?”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이성적, 합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동의하는가?”, 마치 영화는 관객의 얼굴에 바짝 다가서며 강요하는 듯하다.
상황을 보자. 데이빗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다. 거기에 용감하기까지 하다. 데이빗은 마치 인간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매사 그렇다. 그리고 다수의 마을 사람들이 그 점을 인정하고, 그를 합리적 지도자로 세우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데이빗의 결정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듯 하지만, 그 결과는 그다지 좋지 만은 않다는 점이다. 최선의 결정이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인데, 매번 그가 내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 결정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또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행하는 용감한 행동은 결국 자신을 포함해 주위 사람들까지 파국으로 몰아간다.
그는 마트 안의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광기에 빠져들 때도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에게 동조하는 일부 사람들을 모아 결정적인 순간에 마트 밖으로의 도피를 감행한다. 그리고 그런 데이빗의 결정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으로 느껴지며, 매우 용감한 행동이었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이 희생되고, 그는 마지막 순간 용감하게도 권총을 낚아챈다. 불행하게도 그 권총엔 총알이 4발 밖에는 남아 있지 않으며, 그는 남아 있는 총알로 최후의 생존자 4명을 사살한다. 만약 그가 매우 감정적 인물이어서 마트 안에 사람들과 함께 남아 있었더라면, 혹은 권총을 집을 정도로 용감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스스로의 손으로 아들까지 죽일 정도의 결단력이 없었더라면 파국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모든 결정은 합리적이고 용감하고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비춰진다. 아니, 영화는 그렇게 인식되도록 흘러간다.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죽인 데이빗은 오열을 하며 안개 속 괴물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최후의 응전을 벌이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의 오판이었음이 안개가 걷히며 드러난다.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용감한 결정이 가장 최악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가장 앞서 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이성적 판단을 해야 하는가?” 영화는 최악의 파국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상황을 맞는다 해도 이성적이고 합리적 판단을 해야 된다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데, 인간으로서 최선은 어쨌거나 이성적, 합리적 판단 아니겠는가.
여기까지가 다시금 생각하게 된 영화 <미스트>가 관객에게 말하고 싶은 바이다. 그런데 최근 정성일 평론가(그 끔찍하도록 현학적이라는 악명!이 따라 다니는)의 글을 읽고서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성일 평론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데이빗의 앞을 지나가는 군대 행렬과 피란민 행렬을 주목하고 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긴 했지만, 특별히 주목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여자. 두 아이를 끼고 있는 그 여자. 바로 그 여자는 영화 초반부에 마트에서 데이빗에서 도와 달라고 호소했던 여자였다.
그 여자는 데이빗에게 호소한다. 집에 두 아이가 있는데, 큰 아이가 산만해서 작은 아이를 보살피지 못한다고, 그래서 집에 가야 한다고, 집에 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그러나 데이빗은 그 청을 거절한다. 자신에게도 보호해야 할 아들이 있고(그런데 데이빗은 결국 그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 지금 밖은 위험하니깐 나가지 않는 게 좋다고. 그리고 당연하게도 데이빗의 얘기가 좀 안타깝기는 해도 진실이고, 합리적이며, 이성적 판단이다. 그러자 그 여자는 야속한 표정을 지으며 안개가 낀(괴물들이 우글거리는) 마트 밖으로 나가고, 데이빗을 포함해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 여자가 당연하게도(!) 괴물들의 희생양이 됐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그 여자가 두 아이를 옆에 끼고, 군인의 보호를 받으며 데이빗 앞을 지나가는 것이다. 이건 무얼 말하는 걸까? 정성일 평론가는 그 여자의 이미지(짧게 자른 머리)에서 아우슈비츠를 연상했다고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 여자를 다시 등장시킨 건,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 판단을 해야 하고, 그것이 옳지만, 어떨 때는(자식의 목숨을 구하려는 모정과 같이) 이성과 합리를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며, 그것이 진정 인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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