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원작을 프랭크 타라본트 감독이 연출한 영화라는 것과
좀 징그러운 괴물들이 나온다는 사전지식만을 갖고
요즘 한참 찬반 양론이 엇갈리는 논란의 영화 "미스트"를 보았다.
영화를 보는데 몇몇 커플이 중간에 나가는게 보였다.
내가 봐도 이 영화는 데이트무비는 아니었다. 여자친구랑 보면 오히려 기분이 상할만한 영화였다.
하지만 나는 결론적으로 이 영화를 참 괜찮게 봤다.
이 영화를 재미없다고 비난하시는 분들은 이 영화를 단순한 "공포영화"로 보신 분들이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니다.
"공포에 대한 영화"이다.
물론 많은 괴물들이 나오고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과 관객을 숨죽이게 하는 영화속 분위기는 충분히 공포영화스럽지만,
이것은 이 영화의 근본적인 주제나 핵심이 아닌 그것을 표현하려는 도구나 장치에 불과하다.
-이제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괴물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
모두 안개속의 그 막연한 괴생물체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이들이 죽은건 괴물때문이 아니라, 그들 내면에 있는 공포심 때문이었다.
자, 영화를 다시 떠올려 보자.
이 영화에서 괴물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다시 생각해보자.
영화의 초반, 동네 노인이 피를 흘리면서 “안개 속에 무언가가 있다!” 며 뛰쳐 들어온 이후,
문밖에 괴물이 있어 나가면 죽는다고 모두가 말렸는데도
자신의 아들이 집에 혼자 있어 죽어도 가야한다며 꿋꿋이 안개속으로 혼자 걸어 나갔던 그 여자분.
그 여자분이 어떻게 됐는지 기억하는가?
그렇다. 그 여자분은 마지막 장면에 혼자 멀쩡히 살아남아서 군대의 트럭을 타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마트안에서 종말이 가까워 왔다며 사람들을 선동했던 미친 예언자 아줌마.
그녀 역시 괴물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총맞아 죽긴 했지만...)
물론 그녀도 마트안으로 들어온 괴물에 의해 죽을뻔 한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 앞에 다가온 괴물은 그녀를 죽이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영화를 본 분들은 그 장면이 좀 이해가 안갔을 것이다.
왜 괴물은 그 여자를 죽이지 않았을까?
그렇다. 그 여자는 괴물에게 공포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괴물에게 당하려는 순간, 그 여자는 괴물을 무서워하기 보다는 "이제 하나님께로 갑니다..."라며 오히려 마음을 비
우고 있었다.
마음에 공포와 두려움이 없는 그 여자를 괴물은 그냥 놔두고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가까스로 차를 타고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 데이빗과 그의 아들, 그리고 아만다와 할아버지, 할머니.
이 다섯명은 마트를 나와 무작정 차를 몰고 안개속을 달리지만,
결국 연료가 바닥나고 차가 멈추게 되자 데이빗의 극단적인 결단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이들이 죽은 것도 따지고보면 괴물에 대한 공포심과 압박을 이기지 못한 데이빗에 의해서였으니,
결국 괴물이 아닌 인간의 공포가 이들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데이빗.
그러나 데이빗에게는 죽는게 차라리 더 낳을뻔한 잔인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 영화를 디워나 괴물, 프릭스같은 괴수공포영화로 본다면 이 영화는 최악의 영화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공포, 그 자체"에 대한 영화 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촉수달린 문어발 괴물,
모기나 벌을 연상시키는 엄청난 크기의 곤충괴물들,
익룡같은 조류괴물들,
거미를 닮은 괴물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무서워하고 공포심을 느끼는 대상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진정 무섭고 공포스러운 것은 그런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인간내면의 공포심, 그 자체 라는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뿌연 안개속(Mist),
당신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그 속에는 엄청난 괴물이 숨어 있을 수도 있고 ,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
2008년 첫 영화부터 너무 독한 영화를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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