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개봉날 아침에 스위니 토드를 봤습니다.
뭐, 저는 팀 버튼이나 조니 뎁 팬도 아니고, 단지 예전 뮤지컬 콘서트 영상이나 한국판 뮤지컬 스위니 토드
그 환상적인 무대를 보면서, 스위니 토드 라는 작품 자체에 많은 관심이 가서 봤던 건데...
팀 버튼이 이번엔 여러모로 실수한 듯 합니다. 뮤지컬 리메이크라는 것은 함부로 건드리는 것이 아니거늘,
애초부터 뮤지컬과 차별화하고 싶었으면 아예 뮤지컬 요소를 빼든지요~~~~
뮤지컬의 모든 베이스와 형식, 줄거리, 노래를 그대로 빌려왔으면서 중요한 감초 요소는 뭉텅이로 잘라내질
않나, 스위니 토드라는 타이틀 빌려 그로테스크한 팀 버튼 식의 괴기 살인극을 나름대로 핏빛으로 화려하게
꾸미고 싶었나 본데, 스위니 토드라는 본 작품은 단순히 피튀기기 놀이가 아니라는 데 있어 이미 한계는
명확했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짚어 보고자 한다면,
1. 노래 부분에서의 너무나도 심각한 한계점
- 일단 적어도 뮤지컬이라는 장르와 타이틀을 빌려 왔으면, 뮤지컬에서 보여줬던 중요 핵심과 골자에 있어서는
제대로 유지해야 기본적으로 먹고 들어가겠지요.. 그러나, 배우들의 캐스팅은 노래에 있어서는 완벽한 미스
캐스팅이었습니다. 그나마 안소니, 조안나는 조금 제대로 하려고 하기라도 했지만, 정작 주연인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 이 양반들의 노래하는 씬을 보니 가관이더군요... 애들 동요부르듯 성량없는 단조로운 발성에서부터
아예 감정의 문을 닫은 사람들인마냥, 노래 분위기와 감정 등을 전혀 안 싣더군요...;
뮤지컬은 ' 노래로써 연기하는 ' 장르입니다. 왜냐? 노래가 이미 작품 내용의 흐름 반을 먹고 들어가기 때문이죠
아예 뮤지컬 형식을 빌리지 않을 작정이거나 잔가지로서의 노래 삽입이라면 모를까, 내용 흐름과 분위기의
결정적인 핵심을 제시하는 노래를 그런 식으로 부르다니요~~
런던 최악의 파이 같은 노래는 러빗 부인의 기울어가는 장사와, 힘든 세상살이에 애처롭고 푸념어린 하소연을
제대로 살려내야 하고,
에피파니 같은 중요한 곡은, 스위니 토드가 단순히 터핀 판사 뿐만이 아니라 이제 이 세상 전부를 향한 증오와
분노가 폭발하면서 ' 무차별 살인 ' 의 발화점이 되는 부분인 만큼 절망감과 증오가 보는 사람에게도 전율을
느끼게 해줘야 하죠;;
스위니 토드가 부르는 Johanna 노래는 이제는 다시 만나보기 요원한 딸,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인한 한없는 상실감과 딸에 대한 그리움이 애처롭게 묻어나며, 그 분위기 노래 속에서 살인 장면이
섬뜩하게 오버랩되는 게 정상이고,
By the Sea 같이 러빗 부인이 스위니 토드와 함께 만들고픈 낭만적이고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시원하고
행복과 기대에 들뜬 밝은 노래여야 하건만,
노래 실력의 문제를 떠나서 영화 속 노래들을 죄다 무뚝뚝하고 괴기스런 식으로 처리한 데 대해서는
' 팀 버튼식 무표정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연출 ' 의 의욕에만 앞서 작품 내내 개연성 떨어뜨리고,
방향과 분위기 못 살리고, 즉 스위니토드의 중요한 핵심들을 스스로 망가뜨린, 제 살 깎아먹기나 진배없습니다.
2. 메인 타이틀곡의 부재, 어이없는 설정과 잘라내기의 연속
- The Ballad of Sweeney Todd 이 노래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메인 타이틀 곡입니다. 왜 스위니 토드에서
가장 중요한 이 곡의 노래가 삭제되고 BGM으로만, 그것도 스릴한 장면에서 지겹도록 반복 재생되기나 해야
하는 거지요? 뮤지컬과는 차별화된 영화로서의 새로운 스위니토드를 선보이고 싶었다면서 기껏 해놓는다는
것이 뮤지컬 다 베껴 온것 중에 이렇게 타이틀 버리는 겁니까? 말 그대로 이건 정말 죽도 밥도 안된 형국입니다...
그 덕분에 엔딩 씬, 한없이 돌고 도는 억압과 죽임을 상징하고 영국의 산업사회를 차갑게 풍자하는 기괴한
톱니바퀴의 대형 기계음들과 함께 죽었던 이들이 일어나며 모두 부르는 타이틀 곡 The Ballad of Sweeney
Todd, 스위니토드의 대미를 장식할 이 부분 역시 통째로 삭제될 수밖에 없었죠...
거기다가, 배우분들이 따라가기 힘들어선지 Kiss Me 역시 삭제되며, 안소니와 조안나의 비밀스런 만남과
사랑을 다짐하는 부분 전연 나오지 않지요~ 터핀 판사의 노래도 빠지면서 터핀 특유의 응큼하고 엽색적인
클로즈업의 기회가 아예 날아가지요~
거기다 토비야스는 뭐 이제 10살 갓 넘긴 듯한 연령대의 어린이에 중학생으로 봐도 될 정도의 안소니와 조안나의
연령대는 어쩔 겁니까;; 18년의 유배 생활이 왜 15년으로 바뀌었는지도 참 궁금하구요.......
이런 중요한 주변 감초들이 다 잘리고 나니 남는 건 스위니토드라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의 칼놀림과
핏빛 미학... 결국 관객들 머릿속에 영화 후 남는 잔향이라곤 이거 말고 뭐가 달리 남을까요?
3. 조니뎁? 좀비 뎁?
- 스위니 토드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인 인물입니다. 노래들을 통해 나오는 (영화에서도 나왔어야 할)
심경의 변화 역시 그것을 잘 대변해 주고 있죠. 복수에 실패할 땐 너무나도 원통한 마음에 세상을 향한 분노
까지 폭발하게 되고, 자기 딸이 보고싶어 하염없어하는 모습, 판사를 죽이고 난 뒤 모든 복수가 끝나고
자신의 삶의 목적과 방향이 사라진 공황스러운 모습 하며, 마지막에 죽은 아내를 부여잡으며 말로는 표현
못할 자책감과 삶의 의지를 상실한 오열하는 모습 등....
보통, 주인공이 아무리 악역이라도 주인공의 입장과 시각에서 내용을 거쳐가고, 주인공의 감정의 변화와
사건을 헤쳐가는 과정에 잘 몰입되다 보면, 어느 새 그 악랄하던 주인공의 심정과 위치에 감정적으로 동조하고
공감하게까지 됩니다. 큰 예를 들 것도 없이 하얀거탑의 장준혁을 맡은 김명민 배우의 연기에서도 잘 알 수
있죠... 편하게 이런 걸 그냥 주인공 신드롬 효과.. 라는 말로 정의해 두기로 하고,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도
주인공 신드롬은 어김없이 작용됩니다. 제가 뮤지컬을 봤을 때도 입막음을 위한 불가피한 피렐리의 살인서부터,
터핀의 복수때까지 끊임없는 피바람이 불지만, 스위니토드의 내면을 뮤지컬 곳곳마다 충분히 드러내 주기에...
살인 장면에서는 불편한 심경보다는 (물론 이성적으로야 아니지만 감정적으로는) 오히려 통쾌하다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으니까요........... 이것은 작품의 주요 의도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스위니토드가 제시하고자 하는
풍자성을 드러내는데 결정적인 연결고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냥저냥 분노할 때 얼굴 찡그리는 거 빼고는 아무 감정 변화 하나 없는 조니 뎁만이
있더군요... 그냥 머릿속엔 온통 복수, 살인... 모든 감정과 마음의 문을 닫기만 한 음산한 사나이...
그냥, 좀비 뎁이라고 해야 할까요?
거기다, 러빗 부인 역시 생활력 강하고 수다스러운 그 미워할 수 없는 아줌마가 헬레나 본헴 카터의 그
칙칙한 피부의 맥없는 언데드같은 러빗 부인이 되 버리니, 러빗 부인이 해줘야 할 대사속의 연기도 그런
컨셉 속에서 제대로 안되고... 후우...
4. 그리고 덧붙여, 번역 좀...
- 제발 번역 좀 제대로 해 주시죠... My arm is complete 가 내 팔이 완성되었다.. 라니... 어이를 상실했습니다.
arm 이 무기라는 뜻이 있다는 걸 모르고 번역한 겁니까 정녕? (예고편에서는 내 팔이 다 나았다고 나오네요
언제 스위니 토드가 팔 다쳤습니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복수의 무기를 얻은 희열감에 저런 번역이
가당키나 합니까?
그리고 A little priest 노래 속에서도 제가 알아들은 부분만 따져 봐도 그 중에서의 적지 않은 오역들 때문에
내내 한숨만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코믹 풍자가 돋보이는 가사인데; 이건 가사 내용 번역 자막서부터가
앞뒤가 안 맞으니...;;;;
뮤지컬을 안 보셨던 분들이라면 팀 버튼의 잔혹한 핏빛 복수의 살인.. 이거 하나에만 목매달고 감탄하셨거나,
혐오감을 느끼셨거나 하셨겠죠...... 그러나 뮤지컬을 보고 정말 스위니토드에서 꽉 차게 보여준 핵심이
뭔지를 느끼고 온 저로서는 영화로서의 스위니토드가 겨우 저런 앙상한 살인극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뭔가 상당히 억울하고 답답하고 원통한 마음마저 듭니다.
팀 버튼의 엽기 괴기 복수 살인극... 이것만으로 기억되기엔 스위니토드라는 타이틀이 너무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 건 저뿐이었을까요....
P.S 왠지, 이 스위니토드라는 뮤지컬을 너무나도 세세하고 섬찟하게 잘 나타내 줄 수 있는 감독은
오히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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