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이제 뮤지컬은 사치의 단계에서 한발 내려와 어느정도 밥 좀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가끔 들러줘야 하는 기본 소품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멋진 이성에게 작업하려면 뮤지컬 티켓을 구입하는 센스 정도는 기본이 된지 오래고, 마시고 토해야하는 직장 회식을 수준 높은 문화행사로 환골탈퇴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뮤지컬의 고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의 작가인 스티븐 손드하임이 79년 발표하여 토니상을 모조리 휩쓴 걸작 '스위니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가 드디어 거장 팀버튼 - 조니뎁 콤비로 영화화 되었다. 뮤지컬 하면 대사가 노래로 이루어져 있으니 덮어놓고 일단 건전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 하기 쉬우나 스위니토드 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인, 잔혹하기 짝이 없는 호러형 뮤지컬이다.
30년간 수없이 많은 무대에 오른 작품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매진사례를 기록한 작품이기에 뮤지컬 팬들 뿐만 아니라 아직 이 작품을 무대에서 보지 못한 이 들에게도 그 관심은 매우 커져있다.
아름다운 자신의 아내를 탐내는 판사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이발사 벤자민바커는 십수년이 지나 복수에 눈이 먼 이발사 '스위니 토드'로 다시 돌아온다. 판사와 그의 하수인들, 그리고 그 사건을 묵인한 대중을 상대로한 비이성이고 잔혹한 살인은 끝없이 이어지고 그 시체를 재료로 한 러빗부인의 파이는 날개 돛힌듯이 팔려나가는데...
영화이자 뮤지컬인 '스위니토드'의 스토리는 이렇게 단순하고 과격하다. 플롯속에서 오묘한 진리를 쉽게 찾기도 어렵고, 커튼콜의 순간에도 자연스러운 박수갈채가 나오기에는 결말이 너무 비극적이고, 목을 베기 직전에 면도칼을 들고 부르는 주인공의 노래에 어깨를 들썩이기도 참 난감하다.
하지만 '스위니토드'는 단순하기 때문에 더욱 '강렬하고 충격적인 정서'로 가득한 작품이다.
놀라운 무대장치와 출연진의 격정적인 몸짓을 한발치 떨어진 제3자적 관점에서 봐야하는게 뮤지컬의 관객이라면 '영화 스위니토드'는 보다 1인칭 시점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영화적 특성을 극대화 한다. 스위니 토드는 '복수'라는 뜨거운 감정을 지닌 자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차가워서 부서져 내릴 것 같고, 그 파리하고 시체같은 낯빛은 육안으로도 그 냉랭함을 가늠해 볼 수 있을 지경이다. 하지만 칼날에 베인 듯 푹 패인 양 볼과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이 이글거리는 뜨거운 복수의 눈빛은 이 자가 얼마나 뜨거운 복수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극장의 난방시설이 무색할 만큼 한기를 느끼게 하는 블루블랙 톤의 배경위에 쉴새 없이 작렬하는 뜨거운 피철갑의 복수의 향연은, 보지 않고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黑靑赤과 冷溫의 극렬한 대비를 선사한다. 그리고 극한의 차가움과 극도의 뜨거움을 표정 하나하나에 표현한 조니뎁의 신기에 가까운 연기를 보는 것 또한 그를 사랑하는 전세계 팬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커다란 선물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수없이 많은 비극을 잉태하는 이유는 그것의 무조건적이고 비이성적인 속성 때문이 아닐까? 사랑에 걸린 사람의 마음은 민들레 홀씨 날듯 나즈막한 높이를 유지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감정을 폭발시키고 몸을 상하게 하여 스스로를 통제 불가능의 상태로 빠뜨린다. 작품 '스위니토드' 속의 여러 인물들은 자신이 바라보는 '사랑'이라는 곳을 향해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해 나간다. 어쩌면 자신의 그러한 행동이 결국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해치고 돌이킬 수 없는 파국 으로 치닿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나마 알고 있으면서도...
주인공의 구구절절한 복수극에 동참해야 했던 관객들은 얼마 못가서 그의 무차별적이고 도를 넘어선 피의 복수극에 치를 떨며 하나둘씩 등을 돌리게 된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마음을 할퀴고 얼르기를 반복하다 보면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잔혹'과 '매혹' 이라는 두 감정이 어느새 허락없이 슬그머니 마음속에 함께 스며든다.
'뮤지컬 스위니토드'를 보지 못한 관객이나 이미 본 관객 모두에게 영화 '스위니토드'는 지극히 매혹적이면서도 처음처럼 낯선 얼굴로 다시 만나볼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다.
PS)조니뎁의 첫번째 골든 글로브 남우 주연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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