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리턴> 청춘이 좋은 건 늘 새로운 시작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
기타노 다케시 자신의 사춘기 시절 이야기이기도 한 <키즈 리턴>은 10대 문제고등학생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지하철에서 학생들 돈이나 뺏고, 수업시간에 말썽이나 피우는 문제아 마사루와 신지. 학생을 공부기계, 실적의 도구로 전락시킨 교사들에게 이들은 달갑지 않은 존재다. 영화 속 학교 시스템은 문제아들을 철저히 소외시키고, 그들의 꿈과 미래조차 포기한다. 이에 마사루와 신지가 성인전용극장에 들어가기 위해 어른 행세를 함으로써 풍자적으로 기성세대의 위선과 모순을 조롱한다.
어느 날 마사루와 신지는 전에 자신들이 돈을 빼앗았던 학생들이 데려온 권투선수에게 당한다. 자존심에 금이 간 마사루는 학교에 나오지 않고 복싱 체육관에 나가 복싱을 배운다. 마사루 없이 외로운 학교 생활을 하던 신지도 마사루와 함께 체육관에 나가 복싱을 배운다. 아웃사이더로 길을 찾지 못하던 이들에게 무언가 새로운 길이 열리는 듯, 이들이 다리위를 달리는 모습은 활기차다. 영화는 혈기 넘치는 마사루의 복수극이 어떻게 벌어질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마냥 진행된다. 그러나 마사루의 복수는 마사루의 발길질로 어이없이 이뤄지고, 이야기는 갑작스런 사건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마사루와 신지의 스파링에서 마사루의 부하 노릇을 하던 신지가 마사루를 쓰러뜨린 것이다. 회복할 수 없는 자존심의 상처를 입은 마사루는 권투를 그만두고, 음식점에서 만난 적이 있는 야쿠자 집단에 들어간다.
신지는 소질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한다. 이 시기부터 단짝이던 마사루와 신지의 길이 갈린다. 체육관에서는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한 모든 수단 방법을 가르치고, 자신의 몸관리를 잘 할 것을 요구한다. 이 세계에서는 경기에서 이기기 위한 모든 것이 곧 규율이다. 그런데 유망주로 성장하는 신지에게 왕년에 신인왕이었던 하야시가 접근한다. 그는 체육관에서 담배를 피고,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등 체육관에서는 아웃사이더이다. 남에게 의지하기를 좋아하는 신지는 하야시와 가까워진다.
조직에 들어간 마사루는 선배들의 구박을 받으며, 시다바리 생활을 시작한다. 조직의 중간보스는 구역을 위협하는 무리를 잡아, 부하가 쏴죽이게 하고 음식점 웨이터이었던 가즈오로 하여금 총을 들고 경찰서에 가 자수하도록 시킨다. 전부터 이상하게 가즈오를 챙겨주고, 뜬금없이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보던 보스의 속내가 들어난 순간이다. 이 장면을 통해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조직 세계가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세월이 흘러, 체육관에 조직의 중간보스로 성장한 마사루가 나타난다. 그러나 체육관 관장은 마사루가 떠나주길 바란다. 마사루는 주류사회와 체육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마사루는 떠나면서 '넌 챔피언이 되고, 난 보수가 되서 다시 만나자'라는 말을 한다. 즉 자신들이 속한 세계에서 낙오되지 않고, 주류가 되자라는 마사루의 바램이다. 그러나 이 때부터 신지는 더욱 하야시와 가까워진다. 하야시는 신지에게 권투는 비정하고 친구도 부모도 없다며, 주체성을 가지라 한다. 신지는 하야시처럼 권투에서 금하는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그러나 신지가 따르는 하야시도 신인왕 시절을 그리워하고, '강자는 늘 강자인 법이야' 말로 제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으며 다니던 공장에서도 적응하지 못해 그만둔 모순을 지니고 있었다.
마사루는 자신의 상관이 살해당하자, 복수를 망설이는 조직의 보스에게 대든다. 조직의 보스는 상대조직에 대한 복수보다 협상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인의 생명보다는 조직보스의 안위와 이익이 더 중시되는 야쿠자의 생존원리의 비정함을 느낄 수 있다. 마사루는 보스에게 대든 댓가로 심하게 맞고 쫓겨난다.
한편 술을 해서 체중이 감량 안하던 신지는 하야시 말대로 약을 하고 중요한 경기에 나간다. 그러나 약을 하여 기운이 빠진 신지는 심하게 두들겨 맞고 지고 만다.
영화는 마사루와 신지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주축이고, 서브플롯으로 왜소한 체구의 평범한 학생(이름 모름)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이 학생은 커피숍에서 일하는 사치코를 좋아한다. 그리고 저울가게의 안정성 덕으로 어렵게 사치코의 사랑을 얻는다. 그러나, 불량배에 의해 깨진 인형은 이 사랑이 오래 가지 못할 거라는 예언을 한다. 저울가게에 취직한 학생은 '너희는 밥버러지야 한명은 그만둬'라는 상사의 말에 분노한 동료를 따라 가게를 그만두고 택시기사가 된다. 그러나 택시회사에서도 교대시간 맞춰 돌아오지 말고 마누라를 위해서라도 돈을 더 벌고 오라는 상사의 말을 듣는다. 인생의 희망을 보지 못한 학생은 자살을 한다. 학생의 죽음으로 사치코는 커피숍 주인이 싫어하는 담배를 피기 시작하고, 사치코에게 관심있는 남자손님의 영화 보자는 제안을 무시한다.
이렇듯 영화는 마사루, 신지, 학생.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다른 길을 가는 이들이지만, 삶의 모습은 같았다. 이들이 속한 세계의 규칙을 어겼고, 그 세계를 떠나야 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곳에 가면 그곳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적응한다는 것은 그 곳의 규율에 순응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마사루, 신지, 학생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적응 못하고, 나와 각자 다른 세계에서 적응하는 듯 했으나, 결국 거기에서도 부적응자로 낙인 찍힌다. 그렇다고 주체성을 가진 것도 아니다. 체육관의, 하야시의, 조직의, 회사의 꼭두각시였다. 각자의 세계에서 주류가 되고팠던 이들의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그들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마사루와 신지는 다시 만나 고등학생 때처럼 자전거를 타고 학교 운동장을 돈다. '우린 끝난 건가요?',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감독은 절망적으로만 보이는 젊은이들의 세상살이에 희망을 제시한다. 죽음 이전까지는 늘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것이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일반적이면서도 깨우치기 힘든 진리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 과거 - 현재 의 샌드위치 구성은 극의 흐름의 균형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 그러나 기타노 다케시는 절묘한 구성으로 이야기의 감동을 한층 배가시켰다. 한 때 절망이었던 현재는 과거를 통과하여 희망으로 승화한다. 달라진 건 없다. 단지 생각하기에 달렸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만담하는 2명의 학생은 인물들을 풍자하고, 이야기 흐름에 탄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또한 시작부분에 등장하여 관객없는 초라한 만담 공연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서는 관객의 박수가 끊이지 않는 공연을 보여주므로써, 정말이 희망으로 승화되는 부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있다.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부분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워 한번 봤을 때는 과거로의 회상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이러한 감독의 화면 기법은 이 영화의 또다른 미덕이다.
그 동안 보아온 10대를 소재로 한 영화와 그 테마는 크게 다르지 않아 식상한 면도 있었지만, 다케시의 키즈 리턴은 청춘의 방황 이상의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고, 그 테마를 독특하게 풀어간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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