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 그가 '생활의 발견'이라는 다소 독특한 제목을 들고 다시 관객앞에 섰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다소 괴상한 제목의 영화를 들고 데뷔했던...감독 자신마져도 괴상함으로 비춰졌던 홍상수 감독. 뒤이어 연출했던 '강원도의 힘', '오! 수정' 등을 보았던 관객들이라면 그의 영화적 특성을 고스란히 '생활의 발견'에서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홍상수 감독의 전작들은 모두 '생활의 발견'이라는 제목처럼 생활을 발견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영화속에는 겉치장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무심코 흘려버리는 일상성에서 의미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인생도 사는것도 그리고 사랑도 특별하다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생활의 발견'은 다소 냉소적인 시선으로 일상성을 바라보던 전작('돼지가..'. '강원도의 힘')에서 다소 밝게 진일보 했다. 그리고 '오! 수정'에서 보여지던 일상속의 에피소드로 인한 웃음이 '생활의 발견'에서 정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분명 코미디는 아닐진데, 일상속에서 무심코 던지는 배우들의 말과 표정 그리고 행동들이 웃음을 유발한다. 분명 우리도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들일텐데 말이다. 그리곤 웃는것도 잠시 또 한번 가식적이지 않은 진실함을 보는 순간 관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뜨끔함을 느낀다.
바로 이것이 홍상수표 영화의 힘이다. 영화속에 살아있는 생생함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생활의 발견'은 7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영화속 전체에 녹아흐른다.
포스터는 이 영화를 '生 Live 연애 영화'라 칭하고 있는데, 적절한 설명인것 같다. 인기없는 무명 배우 경수(김상경)의 춘천과 경주를 오가는 6박 7일간의 생생한 연애담이 주 구성이기 때문이다.
영화캐스팅이 물건너가 별다른 할일이 없는 경수는 춘천에 있는 선배에게 찾아가고 거기서 사랑한다고 달라붙는 대책없는 엽기녀 명숙(예지원)을 만나서 혼쭐이 난다. 춘천을 떠나 부산의 고향집으로 향하는 기차안에서 만난 선영(추상미)에게 반하게 되고 선영이 내린 경주에 무작정 내린다.
영화를 언뜻보면 우리는 경수가 마치 바람둥이로 보인다. 하지만 알고보면 순진남이다. 연애에는 선수인 듯하지만(두 여자랑 관계를 맺으니깐) 사실상 여자의 마음을 잘 모르는 그런 남자.
춘천의 명숙은 감수성이 풍부한건지 철이 없는건지 경수를 사랑하고는 있는건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경주의 선영은 알고봤더니 유부녀다. 그런데도 경수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정말 자신이 선영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경수의 6박7일간의 행적에 관객들도 함께 동참하면서 그들의 애정행각을 지켜본다. 연애란 원래 이런것일까..라면서 말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술과 여관이 주 소재로 등장하고 여기서도 예외없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이 술먹는 장면은 실제 술을 먹고 촬영했고, 배우들은 가식없는 자연스러운 술기운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특히 추상미가 술먹고 빨개진 귀를 보면 분명 진짜 술 마셨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관방 또한 명숙과 선영과 관계를 맺는 중요한 장소로 등장한다. 영화속 섹스신은 적나라하게 야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하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야하다는 느낌보다는 '섹스란 별게 아니다'라고 받아들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관계도중에 뜬금없이 던지는 한마디에 웃지않을 수 없다.
하여간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좀 어렵게 다가왔던 관객들도 좀 더 유쾌하고 기발해진 '생활의 발견'을 보는 순간의 재미가 쏠쏠할 것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물론 그의 특유의 영화적 고집스러운 일상성을 발견하는 것 또한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영화가 끝났을 때의 관객의 반응. 주인공의 애정행각에 웃고 즐기다가 갑자기 끝나버려서 다소 황당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또한 인생이고 생활이니 어쩌랴.
나의 반응은 좀 달랐다. 자막이 올라갈 때 비로소 영화음악이 흘렸다. 대단하다. 나는 영화음악이 없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영화속 생생한 생활을 발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생활속에는 근사한 배경음악이 깔려있지 않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