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기다린다. 어떻게 된 일일까?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타려고 마음먹고 찜해놓은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뭐 하루 이틀일인가. 이제 이런 일에는 무덤덤하다. 머피의 법칙을 소재로 영화를 찍는다면 난 당연히 주연감이다. 버스를 두 번 타는 일은 있어도 지하철로는 그 장소까지 가기 싫다. 난 웬만해서 지하철 이용을 자제한다. 정말 어쩔 수 없이 버스로는 그 장소 가기가 불가능할 때만 난 지하철을 이용한다. 버스에 비해서 지하철은 막히지 않아서 좋지만 그것만 빼면 지하철은 나에게는왠수 같은 놈이다. 아니 정정해야겠다. 내 기억, 추억 속에서 지하철은 언제나 기분 나쁜 일만 만들어낸 지옥철에 더 가깝다.
비가 내린다.얼마만에 내리는 비인가? 가끔 우산이 있어도 비를 맞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우산이 없을 때 비를 맞는 건 언제나 심란한 기분과 꿀꿀한 내 자신을 촉촉하게 해서 정말 싫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그런 날이면 집에 들어오자마자 머리를 감는다. 구멍이 난 하늘이 먼지와 함께 버리는 빗방울들의 흔적들을 빨리 내 머리에서 지우고 싶어서 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는다. 아차, 방금 전 아파트 입구에 붙여있던 안내문을 그냥 지나쳐 온 것이 화근이었다.
하얀색 머리로 주춤주춤 부엌까지 가서 사다놓은 생수로 하얀색 머리를 다시 검은색머리로 염색을 한다. 밤공기가 차갑다. 그 공기의 차가움이 나를 점점 짓눌려서 숨이막혀온다. 냉장고와 다를 바가 없는 내 삐삐는 좀처럼 울리지 않는다. 하긴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내 기분을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다. 전화선을 통해서 그들과 이야기 할 바이야 혼자 벽을 대고 내 기분을 이야기 하는 건 더 편한 일이다.
어른이 되기 싫다. 그렇다고 아이로 돌아가기도 싫다. 어정쩡하게 그 중간에 서 있으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은 나를 툭툭 건드리고 간다. 그렇게 서 있을 바이야 차라리 저 멀리 가 있으라고 한다. 다른 사람 가는 길에 방해를 주지 말라는 충고를 하면서 말이다. 자기네가 조금만 더 움직이면 될 것을 그들은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그렇게 못 마땅한가 보다.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컴퓨터 화면위에는 좀처럼 내가 생각했던 글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매일 지우고 쓰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래서 내 글은 언제나 텅텅 비어있다. 언제쯤 그 텅텅 빈 글을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학원 강사로 입에 풀칠을 하고 있고유일하게 이야기가 통하는 창녀와 이야기하는 순간이 나에게는 가장 행복하다. 성숙이라는 이름 하에 이 세상이 사람들에게 가하는 아이에서 어른으로의 변신과정은 정말로 끔찍 그 자체이다.
쟤네들 부모는 무슨 생각으로 쟤네들은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대학에 갈 놈은 이미 정해져있고 저런 머리로 대학에 간다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지도 모른다. 가르칠 맛도 안 나고 그렇다고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기특한 학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언제나 혼자 말하고 혼자 듣는 강의만 계속 할 뿐이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전에 다니던 학원 선생들이 실력이 없어서 여기까지 왔다면서 입학원서를 내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난 그 학생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하긴 매일같이 보면서도 우린 서로의 얼굴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뭐가 중요한가. 이 세상에서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무료하고 따분하고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혼자가 되는 방법 밖에는 없다.
학원이 아닌 곳에서 그 학생을 만났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나머지 그 학생은 이상한 질문만 한다. 그런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는 건 수업하는 건 그 이상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녀가 그런 이상한 질문을 한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난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그 학생의 모습에 점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하지만 만남이 지속될수록 그것이 가르쳐 주는 건 화려한 포장지를 벗겨낸 후 초라한모습뿐이다. 첫 만남은 신선할지 모르지만 그 만남이 지속되다 보면 왠지 모르게 저 사람이 포장하고 있는 그 포장지의 역겨움이 나를 쏠리게 만든다. 하지만 그 학생은 그렇지 않았다. 나와 같은 세상에서 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전자건 후자건 별로 상관은 없다. 아니 지금은 그런 걸 하나하나 따지고 싶지가 않다.
그 학생이 어느 날 내게 찾아와 말은 건넨다. 누군가의 아이를 가졌다고.. 그 질문에나는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하는 그런 뻔한 질문을 하기가 싫다. 그런 질문을 통해서얻을 수 있는 답이라면 애초에 그런 질문을 그 학생은 내게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면서 우리만의 단어로 그 학생에게 이야기한다. 아무도 그단어가 말해주는 이야기는 모른다. 그저 우리만이 그 단어가 주는 의미를 알고 참고 있었던 감정들을 토해낸다.
버스를 기다린다. 언제쯤 버스가 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난 오늘만큼은 지루하지 않다. 처음으로 그 학생과 버스를 탔을 때 서먹먹한 거리감이 지금은 사라지고 우리 앞에는 그저 어른에서 아이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정류장만 보일 뿐이니까.
사족
그저 20분 만에..영화와 전혀 상관이 없는 감상문 아닌 감상문을 만들어 내었네요. 영화를 보면서 느낀 그 감정이 이 글에 백프로 담겨있지 않지만..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영화가 시종일관 유지하는 분위기는 좋았지만.. 왠지 영화 [버스 정류장]은 제가 그다지 호감을 살만한 영화가 아니네요. 하긴 일년에 몇 백편의 영화를 보지만 그중에 제가 호감을 가지는 영화가 몇 편인지 말하기가 부끄럽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