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소설이 그들의 상처투성이의 삶을 재미난 농담으로 얼머부리고, 남미소설이 그들만의 독특한 정열로 열정이 묻어나는 삶을 얘기하고, 유럽소설이 지루한 철학적 메세지로 고전적인 삶을 노래했다면, 영국소설은 평이하고 지루한 어투로 피곤한 일상적인 삶을 식상할만큼 자세하고 묘사하기를 즐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이 영국영화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묘한 매력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빨간 원피스와 숄로 얼굴을 가리며 자유롭게 춤을 추며 나체로 푸른 호수속을 돌고래처럼 날아다니는 아이리스의 분방함은 뿔테안경에 수줍움으로 자신의 언어조차에도 망설임이 배여있는 존에게는 일종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지만 또한 자신의 감춰진 열정속에 질투라는 이유없는 증오를 만들어내는 독약과 같다..
마치 뙤얕볕속에서 호수로 달려간 어린아이가 그 시원한 물결에 발을 담궈보지만 아득한 두려움에 망설임이는 것처럼 그녀와 결국 결혼까지 하지만 존의 그 감춰진 증오는 수십년인 지나 주름살이 배여있는 아이리스 얼굴속에 숨어있다가 아이리스가 지독한 치매에 걸리자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가져다 준다.
하지만 결국은 그 모든 갈등은 사랑속에 녹아버리고 아이리스의 죽음은 존의 삶까지 평온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 영화의 특징은 그 무엇보다 교묘한 편집에 있다. 과거와 현재의 뒤죽박죽일 수 밖에 없는 영화의 특징은 영화속의 사소한 소품과 배우들의 평이한 말투속에서 숨어있다가 어느새 관객이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불쑥 튀어 나와 시간을 이리저리 교묘하게 테이블에 늘어선 카드처럼 말끔하게 펼쳐 놓아 관객의 숨결을 앗아가 버린다.
더우기 처음장면에 나오던 호수속에서의 수영장면은 일종의 인간이 추구하는 차갑지만 열정적인 자유와 같고, 항상 아이리스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존이 결국 아이리스와 보조를 마추게 되는 순간에는 그들의 삶이 하나의 인생에 의해 좌우우지 된 것이 아니라 서로가 보조를 맞춤으로 완성되었음을 잊지 않고 상기시켜 준다..
영화가 솔직히 지루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그 잔잔한 전개와 가끔씩 숨을 몰아쉬게 하는 교묘한 편집장면이나 주디 덴치의 연륜이 느껴지는 그 놀라운 연기력과 자유롭지만 한없이 불안정해 보이는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로 충분히 만족할 만한 영화다..
하지만 영국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이던 산뜻한 정원에서 차를 마시는 나른함또한 감수해야할 영화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