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카피스트'라는 직업은 일종의 베껴먹는 안 좋은 직업쯤으로 오해하고있던 나에게, '카핑 베토벤'이란 영화는 그를 따라하려는 또 다른 열등의식을 가진 이의 이야기쯤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베토벤의 음악을 정리해서 카피하고 그의 음악을 받아적어내는등의 일종의 음악적인 비서이자 그의 아래에서 많을 것을 배울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가진자인 '카피스트'를 통해 베토벤의 진면목과 이면을 다르게, 또 진지하게 볼수 있었던 기회를 준게 바로 이 '카핑 베토벤'이란 영화였다.
베토벤을 직접 다룬게 아니라 가상의 여인 '안나 홀츠'라는 여인을 통해 제3자적 관점이지만, 그의 음악적 분신과도 같은 그녀를 통해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베토벤의 말년과 음악적 광기를 가까이서 느낄수 있었다고 본다.
다만, 마지막 그녀가 햇볕이 비추는 집을 벗어나서 그녀의 길을 걸어가는 엔딩은 그녀가 결국 허구의 인물이라는걸 생각한다면 별 의미없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녀보다도 그녀를 통해 본 베토벤에 더 많은 관심이 있지않았을까하는 생각에.
이 영화가 나를 전율로 짓누른 장면은 역시 모두가 공감하듯이 교향곡 제9번 '합창'부분일 것이다. 불안에 떨고있는 베토벤과 함께 카피스트 '안나 홀츠'가 같이 한 몸이 되듯이 서로를 교감하며, 또한 음악과 영혼을 교감하며 그 무대를 이끌어내는 장면은 교향곡 제9번의 웅장함과 함께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과 감동'에 빠지게 한다. 우리가 마치 그들과 함께 그곳에 앉아있는 관객인 것처럼.
사실, 영화는 10여분이 넘는 그 한 장면만으로도 값비싼 연주회에 온듯한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카핑 베토벤'이라는 카피스트 '안나 홀츠'를 통해 본 베토벤의 음악적 열정과 광기는, 그에게 귀를 멀게한 신의 뜻대로 더욱 큰 고통을 위대한 예술로 승화시킨 것임을 알수 있었다.
그의 광기와 고통이 후대의 인물인 우리에게는 '음악적인 신의 축복'으로 내려졌음을 감사할수밖에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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