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 교향곡 초연 장면의 황홀감.....
실제로도 베토벤은 청각을 잃고 괴팍해졌으며, 가난과 고독 속에서 그 유명한 9번 교향곡을 만들어 냈다. 그는 귀가 완전히 먹은 상태에서 9번 교향곡 초연을 지휘했으며, 지휘가 끝났을 때 관중의 박수소리를 듣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자 한 여성이 베토벤을 돌려 세웠다고 한다. 영화는 베토벤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여성 카피스트가 있다는 상상력을 가미해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베토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베토벤의 이미지, 그대로 이며, 새로운 베토벤을 그리지는 않는다.
음악에서 카피스트는 작곡자가 손으로 쓴 악보를 연주용 악보로 깨끗이 옮겨 적는 사람이라고 한다. 당연하게도 카피스트는 단순히 옮겨 적어서만 되는 것은 아니고, 스스로도 어느 정도 작곡의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작곡자와 교감도 이루어져야 한다. 영화 초반에 '왜 악보를 바꾸었느냐"며 질타하는 베토벤에게 안나 홀츠는 '바꾼게 아니라 고친 것'이라고 응수한다. 괴팍한 베토벤에게 꼼짝 못하는 남성들만이 존재하던 환경에 솔직한 감상평을 거침없이 내뱉는 안나 홀츠를 베토벤은 신뢰하고 기꺼이 솔메이트로 인정한다.
영화는 베토벤과 안나 홀츠와의 교감을 여러 각도에서 비춘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건 여성으로서 능력을 인정 받으려는 안나 홀츠가 부딪치는 여러가지 상황들이다. 특정한 분야에서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냉대의 극복을 다룬 영화로도 읽힐 수 있는 부분인데, 안나는 남성 카피스트라면 하지 않아도 됐을, 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을 곁들어 해야 했으며, 베토벤의 조카로부터는 매춘부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베토벤과 안나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 매우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스승과 제자로서 깊은 신뢰를 가지게 되지만, 연인 관계로까지 발전하지는 않는다. 흔히 이런 영화들이 스승과 제자의 애정으로까지 나아간다는 점에서 보면, 통속성으로 빠지지 않은 것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다만, 베토벤이 몸을 씻겨 달라고 부탁(명령?)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제일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일종의 정화의 의미일까? 아니면 그 시대에는 그런 요구가 당연한 것이었나? 어쨌거나 왠지 다른 부분에 비해 좀 튀는 듯한 느낌...
또한 갑자기 끝나는 듯한 영화의 마무리도 썩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뭔가 이야기가 더 있을 듯한 분위기에서 느닷없이 막을 내려버린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러닝 타임 때문인가? 다만, 영화가 끝났을 때 의외로 시간이 훌쩍 지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별히 재미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은데, 둘이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 자체가 보는 사람을 몰입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고 평가해야 하나.
아무튼 베토벤을 다룬 만큼, 이 영화의 최고 장점은 역시 음악이다. 특히 약해진 청력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지휘하기를 주장하는 베토벤이 안나의 도움으로 9번 교향곡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약 10분간에 걸친 장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베토벤과 안나 홀츠, 둘의 조화가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정말이지 귀와 눈을 동시에 즐겁게 하며,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즐길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그네츠카 홀랜드 감독의 말처럼 보는 사람이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린다면 슬프기 때문이 아니라 그 광경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