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070920 광명CGV 심야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곽감독의 경험담이라던데, 어디부터 진짜 경험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몹시 궁금해 질만큼 신파의 신파에, 다시는 이런 사랑 할 수 있을까 싶은 애절한 사랑이야기다. 그래서 제목이 그냥 <사랑>이로구나.
친구와 둘이 갔는데 난 그 신파가 좋았고 친구는 싫었다. 세상에는 영화 <사랑>을 보는 두 가지 관객이 있다. ‘그 신파가 좋았던 관객’과 ‘그 신파가 싫었던 관객’. 좋았건 싫었건 간에, 사랑이든 우정이든 애정이든 배신이든 복수든 간에, 최소한 나 같은 경우에는 극장 갈 때 나와 똑같은 지리 하고 멸렬 한 삶의 복사판을 보러 가고 싶다기보다 오직 영화를 볼 때만 열렬히 살아 볼 수 있는 그런 감정의 높고낮음을 ‘살아’보고 ‘겪어’보고 싶어서다. 솔직히 이런 경험, 영화가 아니면 어떻게 겪어보겠는가(사실...실제로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면...극구 사양이다...).
버뜨.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었다. 신파가 어땠건 간에, 영화를 본 이후 TV에 미주를 연기한 박시연의 광고라도 나올라 치면 흥분하여 손가락질을 하며 좋은 소리 안 나올테니까.
영화 속에서 배우는 연기를 한다. ‘나’가 아닌 또 다른 ‘나’, 영화속에서는 분명히 존재하고 살아 숨 쉬는 또 한명의 소중한 인간의 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다(그리고 관객은 그 배우를 통해 제3의 ‘나’가 되고). 그러므로 그에게도 분명 크고 작은 일상사가 있고, 얼굴이 있고, 표정이 있고, 감정이, 감정이, 감정이! 있다.
하지만 영화 <사랑>속에서의 미주는 어디에도 없었다. 얼굴도 없고, 표정도 없고, 감정이, 감정이, 감정이! 없었다. 연기(를 했는지도 의심스러운 연기)자 박시연이 스크린에 등장하여 “미안해..”한마디를 던지는데 그 구구절절 슬픈 사연으로 이루어진 미안해-가 어찌나 가슴에 돌멩이라도 맞은 듯 뻣뻣하고 그랬는지 웃느라 두드린 가슴에 멍이 들었다......‘대신 살아주는’것까지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저 ‘연기’라도 해 주면 좋았을 것을...... 얼굴 없는 배우 박시연. 언제쯤 얼굴 보여줄래요? 사실 주진모도 너무 과잉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표출하는 것 같아 거북했으나 상대배우 박시연의 열연으로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아수라장에서도 홀로 빛을 발하던 김민준! 이 영화는 바로 당신의 영화였습니다!
↗ 연기하려면 이 정도는 해 줘야 되는거 아냐!!!
↗ 애들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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