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현실에 대한 모방이고, 압축이다. 그래서, 많은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현실을 경험하고, 인생을 음미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영화가 현실을 단순히 반영하는 매개체는 아니다. 영화는 역으로 자신의 존재 양식인 현실 세계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영화 주인공의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 등이 대중들 사이에 유행으로 번지는 경우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알제리 출신의 영화 감독 라시드 부샤렙(Rachid Bouchareb)의 2006년도 작품 <<영광의 날들(Days Of Glory)>>도 현실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단순한 유행 수준이 아닌, 한 국가의 정책 결정 수준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영화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영화는 1943년 알제리 전선에서 1945년 프랑스 전선까지 반파시즘 항전에 자원한 북아프리카인들의 일상과 전투 등을 기록 영화와도 같은 기법으로 묘사한다. 그렇다보니, 영화에서는 특정 주인공을 구분하기 어렵고, 또한 극적인 사건의 전개도 없다. 감독의 시선은 마치 전장의 종군 기자의 사진기처럼 나찌 독일에 대항하는 자유 프랑스군의 일원으로서 전쟁에 참여한 사이드, 야시르, 메사우드, 압델카데르, 마르티네즈 등 5명의 북아프리카인들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담을 뿐이다.
필자는 흥행이나 찬사와 같은 영화의 성공은 대중성과 작품성이란 조건을 동시에 만족할 때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 영화의 성공은 사실성과 고증성이란 조건을 동시에 만족해 한다고 본다. 고증성이 미흡한 사실성은 전쟁 영화 고유의 긴장감과 박진감을 감쇄하는 일이고, 사실성이 부재한 고증성 또한 전쟁 영화라기보단 다분히 활극 영화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 영화에서 사실성과 고증성의 균형은 핵심적이다. <<영광의 날들>>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한 영화 가운데 하나다. 극 중에서 두 번의 대규모 전투 장면이 등장한다. 시간이 짧을 뿐, 전투 장면은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처럼 아주 사실적이다.
그러나, <<영광의 날들>>은 단순히 전투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전쟁의 참상을 전달하는데 있지 않다. 감독이 주목하고자 했던 시선은 당시 프랑스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약 23만 명에 이르는 북아프리카인들이 자신의 부대에서 경험해야 했던 인종적 차별과 냉대 등이다. 적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알제리인들을 선두에 동원하는 장면, 식당에서 음식의 차별적인 배식 장면, 회교도들을 무시한 위문 공연 장면, 서신 검열 장면 등을 통해 감독은 프랑스가 나찌 독일에 대항해 수행하던 전쟁도 결국, 독일 제국주의와의 패권 쟁탈전에 불과하다는 점을 관객들에게 무언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감독은 영화를 끝내면서 마무리 자막을 통해 종전 60년이 지나도록 자국민이 아니란 이유로 그 어떤 보상도 거부하는 작금의 프랑스 당국을 직접적으로 고발한다. 작년 9월, 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이 영화의 시사회에 참석해 그 동안 무시당한 북아프리카인들에 대한 보상을 법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며칠 뒤 프랑스 정부는 실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유 프랑스군에 참전했던 식민지인들에 대한 보상과 대우를 법으로 제정했다. 한 편의 영화가 현실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 일례가 아닐 수 없다.
이 영화가 필자에게 여타의 전쟁 영화와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도 영화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주어진 상황이나 배경은 분명 다르지만, 우리 역시도 과거 대동아전쟁 당시 무수히 많은 조선인들이 천황의 신민으로, 황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조선인들이 전사하고 부상당했다. 심지어 어린 소녀들마저 정신대란 이름으로 전선으로 강제 동원당했다. 이제, 일본이 패전한지도 60년이 지났다. 일본은 지금까지도 조선인 징용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을 회피한다. 정신대의 존재조차 애써 부정하려고 한다. 북아프리카인들이 자신의 식민지 모국에 자원을 했던, 또는 조선인들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강제 동원당했던 식민 통치국으로부터 그들은 오직 무시와 멸시, 그리고 냉대와 차별 등을 받았다. 물론, 전후 일본내 양심적 세력들을 중심으로 조선인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촉구하는 여러 운동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성과는 아직까지도 불충분하다. 그렇기에,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은 여전히 치유가 끝나지 않은 전쟁인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러한 이유로 인해 <<영광의 날들>>이 이룬 현실적 영향력이 내심 부럽기까지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