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대학 강의실에서 의학을 강의하는 노교수 정남(전무송)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는 오래전 일본
의 병원에서 한국인 의사가 뇌수술 하는 장면을 기록화면으로 보여준다. 대학은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시위 때문에
소란스럽다. 노교수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의 파국이 시작되었던 1942년의 안생병원으
로 관객을 안내한다. 이 같은 이야기 속 이야기, 즉 액자형식을 통해 <기담>은 제목 그대로 과거의 기이한 이야기
를 들려주는 주인공의 회상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회상구조의 묘미는 두 번째 에피소드에 이르러 슬
쩍 무너져버린다.
1942년 경성의 안생병원에서 일어난 세 가지 에피소드를 엮은 <기담>의 얼개는 두 번째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대
목에 이르러 새로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 이를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있는 틀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
다. 젊은 정남(진구)이 아니라 소녀(고주연)가 등장하는 시점의 이동을 보고 있노라면 다소 어리둥절하게 된다. 회
상구조를 통해 정남의 시점을 제시하다 슬쩍 물리치는 전개는 파격이라기보다는 아쉬움이 남는 처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시각적인 연출은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안생병원을 중심으로 반복적으로 등장
하는 병원의 음습한 정서는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는 정식, 정범식 감독 두 연출자의
집요함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회상을 통해 제시되는 역사적 배경의 이유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1979년의 유신 말기와 1942년의 일제 말기가 억압과 상처의 영혼들을 공명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상통하는 구
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섬세함은 부족하지만 에피소드마다 반복되는 쓸쓸함의 정서가 <기담>을 2007년 여름에
나온 공포영화 중 특이점의 위치에 자리매김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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