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가던 미용실에 6살짜리 아들과 같이 머리를 깎으러 가면
넉살좋은 동갑내기 헤어 디자이너는 연신 히죽히죽댄다.
머리 깎을 땐 왜 그리 졸려오는지
역도 선수의 사력으로 눈을 밀어 올리며
뭐 그리 재밌냐고..투덜대면
아까 깎은 아들 머리를 또 깎는 것 같다며
이곳 저곳 멋대가리 없게 솟아오른
모서리를 매만진다.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복싱의 기본기술인 잽을 가볍게 사용하시며
과도히 남용하시던 꿀밤의 후유증으로 생긴 굴곡인줄 알았는데…
이런… 그건 유전이었다.
아들 둘을 키우다 보니
드라마의 흔하디 흔한 이야기 소재인
“씨 도둑질”이 얼마나 숨기기 어려운 것인지 절감하게된다.
아버지를 속 터지게 하던 나의 느린 행동이
우리 첫째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어
바쁘디 바쁜 현 시대를 역행하며
여유만땅의 시간체계 속에서 사는 그 모양을 보노라면
다혈질로 분류되었던 어렸을 때 아버지의 성격에 관한
8대 불가사의만큼이나 미스터리 했던 그 원인과 이유를 알게 됨과 더불어
그 놈의 유전이 얼마나 질기고 질긴지 새삼 깨닫게 된다.
“유전”
요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아들과 나를 한 통속으로 만드는 걸까?
왜 아내가 나랑 싸우면 애꿎은 아들을 구박하게 되고
아들이 잘못하면 왜 제 발 저린 도둑처럼 내가 뜨끔하게 되는 걸까?
이 숨기고 싶고 없애고 싶은…
하지만 그림자처럼 슬그머니 고개 드는
어두운 바이오 실루엣……
운좋게 그 유전자를 피해가더라도
그 성향을 가진 미천한 부모의
친절하고 세심한 생활교육으로
선천적 태생이 아닌 후천적 영향이라도
순진한 “짜식”들은
기어코
졸업장처럼 받아가지고 간다
이 모진 생명력……
이것이 “미스터 브룩스”의 주인공 브룩스 씨가
살인의 쾌감을 즐기는,
변태의 끝을 달리는 비 상식의 행태를 보임에도
평범한 “건이 아빠”인 내가 남같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연쇄 살인범을 너무도 다른 뇌 구조와 정서를 가진
외계에서 온 살인마로 묘사해왔던 이전의 영화들과 달리
이 작품은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흠없이 멀쩡한
한 아버지도 흉악한 범죄자가 될 수 있음을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마치 소주 병나발을 사랑하시어 손 떨며 침 놓으시게 된
우리 동네에 딱 하나밖에 없던 공포의 한의원 할아버지처럼
주인공을 그냥 단순히 일종의 중독증을 가진 한 사람으로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진료가 짜릿하다 못해 찌릿한 공포가 될 수 있음을 경험한 우리 동네사람 모두가
본인만큼이나 알코올 중독의 극복을 염원하고 바랬던 것과 같이
브룩스씨가 살인 중독에서 탈출하기를 응원하게 되는 묘한 심리를 끌어낸다.
이해하기 힘든 연쇄 살인범을 자신과 동일시하다 못해
경찰에 걸리지 않기를 또 무사히 모든 살인을 마무리 짓기를
또 흠 많은 인생이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고쳐 살기를 바라게 된다.
관객과 그 연결고리를 잘 매어놓은 이 영화는
“유주얼 서스팩트”의 출현 때 느낀 반전의 그것처럼
진화된 스릴러의 전형을 예고하는 듯한 예감을 준다.
동시에 남을 죽이는 살인의 쾌감을 딸에게 물려준 브룩스씨의 한 많은 업보처럼
아들의 삶 어느 부분을 부여잡고
나를 듯한 인생을 발목잡는 유전의 습성을 물려준
나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한다.
춤추듯 흔들리는 침 사위로 한 군데 놓으실 침을
무한정 서비스로 여러 군데 놓으시던 한의사 할아버지의 침같이
내 마음 한 구석을 사정없이 찔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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