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미운 사람 중에 하나가 영화도 보기 전에 결말까지 다 얘기해주는 사람입니다. 제가 언제 얘기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 데 자기 흥에 겨워서 끝까지 다 얘기해주는 사람이 있죠. 친한 사 람이라면 한대 때려주고 ‘그만해!’라고 하면 되는데 잘 모르는 사람 이거나 신문이나 텔레비전이라면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던 제 자 신을 탓하는 수밖에 없죠. -.ㅜ 요즘 제 주변엔 [디 아더스] 결말 을 듣고 영화 볼 맛 사라졌다며 서글퍼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전 다행이 그런 위험에서 벗어나 [디 아더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앤은 남동생 니콜라스 그리고 엄마인 그레이스와 한 외딴 저택에 살고 있습니다. 앤과 니콜라스는 햇볕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죽 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집에 언제나 짙은 색의 두꺼운 커튼이 굳게 닫혀져 있어 컴컴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의 집으로 새로 운 하인들이 찾아옵니다. 그 중에서도 미세스 밀즈는 묘한 분위기 를 띠고 있죠. 그래도 앤은 엄격하고 자신이 말은 안 믿어주면서 동생만 위하는 엄마보다는 밀즈가 더 따뜻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엄마가 무섭기까지 합니다. 집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엄마는 오늘은 급기야 자신의 목까지 졸랐으니까요. 제가 순간적으로 무슨 이상한 눈을 가진 할머니로 보였다나요? 아무래도 엄마가 미친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그날처럼........
사람이 살고는 있는데도 왠지 이 집은 그 존재 자체로도 상당히 으 스스합니다. 저에겐 그레이스와 그 거대한 저택이 같은 모습으로 보이더군요. 그레이스는 전쟁터에 나간 남편에 대한 기다림에 지쳐 어머니 역할을 잊은 듯싶습니다. 그 빈자리로 인해 어머니나 아이 들이나 마음속의 따뜻함 사라지면서 조금씩 굳어져가는 느낌이었습 니다. 햇볕이 차단되어 차가운 느낌이 가득한 집처럼 말이죠. 특히 나 그레이스와 이이들 사이엔 제대로 된 대화를 볼 수가 없습니다. 한 건물이 단순한 집이 아니라 가정이 될 수 있는 건 그 구성원이 서로 상호간의 감정의 교류가 있을 때 가능 한 것입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받아들이지 못한 채 신의 말씀에만 매달리는 그레이스의 모습은 거대한 외양만 갖춘 채 가정이 되지 못하는 저택과 너무 비 슷하더군요. 한쪽을 열기 전에 다른 쪽은 꼭 닫아야 하는.....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은 확실히 공포라는 부분에서 재능이 탁월한 감독입니다. 과연 홈그라운드를 떠나도 전만큼 능수능란한 능력을 펼쳐 보일 수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괜한 걱정이 되어 버렸 군요. 악소리 나도록 무서운 공포 보다는 거대한 집을 비추던 촛불 의 일렁임처럼 진실을 왜곡되어 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훌륭히 해내 고 있더군요. 촬영도 촬영이었지만 사운드 정말........ >.< 예전에 히치콕 영화 봤을 때 기분도 좀 들고 서서히 신경을 긁어내려가는 섬뜩함이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잘 살린 창백하고 시름이 많 아 보이는 니콜 키드만의 그레이스도 좋았지만 전 앤이 참 인상적 이었습니다. 그레이스의 시각에서 영화를 진행시키기보다 앤 쪽에 조금 더 비중을 두고 영화를 진행시켰더라면 의도했던 바가 훨씬 더 잘 살았을 텐데 좀 아쉽더군요.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들은 그 집에서의 수많은 탄생과 좋은 시간 은 잊고 단 한번의 죽음만 기억한다.’라는 다른 영화의 대사가 떠 오르더군요. 사람들은 계속 [식스센스]를 떠올리고 비교하던데... 전 오히려 동양설화에 더 가까운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우리 옛이야기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었잖아요. 자꾸 [식스센스](훌 륭한 영화이긴 하지만...)에 기준을 둔다면 스스로 영화 보는 한계 를 그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세상에 수많은 영화들이 존재 하는데 결과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이제 더 이상 놀라운 반전을 기대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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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e65
더 이상 놀라운 반전을 기대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이 아닐까요?
2010-08-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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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스(2001, The Others)
제작사 : Le Studio Canal+, Miramax Films, Canal+ Espana, Cruise-Wagner Productions, Las Producciones del Escorpion, Lucky Red, Sociedad General de Cine / 배급사 : 와이드 릴리즈(주)
수입사 : (주)시네마천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