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형제의 <기담>은 1942년 경성의 안생병원이라는 곳에서 일어난 세 가지 사건들을 세 의사들의 관점에서 보여줍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름다운 여자 고등학생의 시체에 매료된 의대생의 이야기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은 뒤로 죽은 사람들의 귀신을 보는 소녀의 이야기이고, 마지막 이야기는 아내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 의사와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 이야기죠. 독립된 이야기들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나는 일들이라 이들은 모두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중 하나는 병원건물이 철거되는 1979년을 시대배경으로 잡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맺어지지요.
장르물로 보았을 때, 이들은 그렇게까지 독창적이지 않고 내용도 가벼운 편입니다. 딱 인터넷 괴담 정도의 수준을 기대하시면 되겠습니다. 1부는 정말 그런 괴담식 이야기에요. 3부의 경우는 인터넷 괴담보다 <장화, 홍련> 류 충무로 호러 영화 클리셰를 총집합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무섭냐고요? 음,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온 가족이 다 볼 수 있는 호러영화입니다. 심각한 신체 손상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깜짝 쇼도 별로 없고요. 정가 형제는 그렇게까지 호러 장르에 목을 멜 생각이 없습니다. 무서울 필요가 없으면 그냥 안 무섭게 가죠. 무서운 장면이 나와도 그 설정에서 일어날 법한 강도로만 그리고요. 사실 그렇게 독창적인 호러 장면도 없습니다.
이들은 장르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는 이 재료들을 이용해 보다 폭이 넓은 초현실주의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1부에서 정말로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반전으로 끝나는 짤막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에 말려든 주인공의 악몽을 얼마나 그럴싸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꾸며낼 것인가입니다. 사실 2부도 마찬가지고요. 3부에서는 내용이 조금 더 강세지만 그래도 다 뻔한 이야기라 역시 살인사건 이야기 자체보다는 그림자 없는 유령의 비주얼 쪽에 더 시선이 갑니다.
드라마의 힘은 비주얼보다 약합니다. 호러를 빙자한 슬픈 멜로드라마가 목표라고 해도 여전히 각본은 중요하죠. 하지만 이들은 모두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뻔한 이야기들의 가벼운 변주잖아요. 드라마의 힘이 살 만큼 충분한 재료가 주어지지 않는 겁니다.
1942년이라는 시대배경이 이 이야기들에 특별한 힘을 실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마지막 그림자 이야기를 제외한 나머지 에피소드들은 꼭 당시를 배경으로 할 필요도 없죠. 그리고 이 영화의 원래 각본은 40년대부터 70년대 말까지를 커버하고 있었답니다. 각색과정 중 그게 모두 40년대로 옮겨간 거죠. 핑계야 많겠지만 전 그냥 이 사람들이 일본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일본색은 웬만한 일본영화들보다 더 강하거든요. 그 때문에 오히려 덜 일본영화처럼 보이겠지만.
영화와 배우들은 모두 방어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다들 충분히 낼 수 있을 법한 속도를 내지 않고 평소보다 한 10퍼센트 정도 느리고 신중하게 움직이지요. 그 때문에 영화는 아주 안전하게 만들어졌고 결과물도 보기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생기는 떨어지죠. '웰메이드'를 계산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배우는 단 한 명,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고주연뿐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사람도 고주연이고요. (07/07/25)
기타등등
음악은 문제가 좀 많았습니다. 따로따로 떼어놓고 보면 별 문제가 없죠. 하지만 영화 안에서 들어보면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순진무구하며 결정적으로 지나치게 많습니다. <싸이코>나 <장화, 홍련>의 흉내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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