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 경성 공포극’인 만큼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은 이 영화의 공포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1942년은 일본의 제국주의가 막바지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바다 건너 신문물의 유입이 한창이던 시대였다. 그 중심 경성에서는 낮이 되면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의 향락이, 밤에는 비명이 난무하는 살육이 거리를 지배했다.
병원장 딸과의 결혼을 앞두고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정남이지만 어쩐 일인지 아리따운 여고생 시체에 마음을 빼앗겨 정신을 홀리고, 멋쟁이 새 아빠가 생겨 환희에 들뜬 아사코의 기쁨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와 동시에 악몽으로 급전직하하며, 시한부 사랑을 나눈다.
사랑도 넘어서지 못한 시대의 이중성. 아름다운 시기에 닥친 슬픔을 공포로 승화하는 기담은 묘사의 극적 대비를 통해 말 그대로 색깔 있는 공포를 선사한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붉은 장미잎이나 하얀 눈밭 위에 흩뿌려진 핏방울, 또는 다다미방에서 상징적으로 펼쳐지는 사계절처럼 아름답지만 끔찍한 느낌을 강조한다. 이처럼 직접적인 공포보다 철저히 형식미에 입각한 공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담>은 독특하다. 게다가 표현을 과장하지 않고 절제하다보니 무섭기보다는 안타깝다. 사랑과 죽음이 뒤엉킨 순간에 발생하는 비극에 초점을 맞춘 까닭이다. 물리적인 공포보다 심리적인 공포에 주력하는 <기담>은 무서움을 유발하는 장치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전단계의 장면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켜켜이 쌓아가며 사랑에서 공포로, 외부세계에서 내부세계로 이동하는 것. 정남이 이승과 저승의 심리적 경계에서 혼을 빼앗기는 것도, 아사코가 밤이면 죄의식에 못 이겨 늘 가위에 눌리는 것도, 인영이 과거를 잊지 못해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것도 모두 이에 따른 것이다.
<기담>은 이야기에서부터 공간까지 시대가 품고 있는 이중성을 구현하려 애쓴다. 그래서 영화는 구구절절한 대사보다 단 한 컷의 이미지에, 익숙한 클리셰 대신 기묘한 상징에, 복잡한 플롯보다 강렬한 스타일에 이끌린다. 그 때문에 썩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둔 탓도 있지만 98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3개의 에피소드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1942년이라는 모순된 시대를 끌어들여 신구좌우의 이념이 충돌하는 작금의 대립양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공포영화가 단순히 공포를 유발하는 장르만은 아니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드디어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