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의 경성. 진보와 변화, 보수와 전통이 뒤엉킨 그 때 이국적이고 신비하며 몽환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그 시절, 어느 병원에서의 기이한 세 가지 이야기를 주축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이 세가지
이야기는 얼핏 서로 별개인듯 진행되어지나 오프닝의 나이가 든 정남의 회상에서 다소 짚어낼 수
있듯이 단 4일만에 병원이 문을 닫게끔 이어지는 파국 속에서 치밀하게 맞물린다. 시체를 사랑하게
된 의대실습생, 귀신을 보는 소녀를 위해 노력하는 천재 의사, 그림자가 없는 아내를 둔 남편. 그리고
여기에 숨겨진 또다른 이야기들. 그래서 '기담'은 애틋하고 슬프다. 억지로 짜낸 공포가 아닌 그
이면에 애틋한 슬픔이 자리잡고 있는 깊이가 있는 공포다. 그 곳엔 인간의 근원적 감정인 사랑이 존재하고
그 사랑은 기이하나 애절하고 안타깝다. 물론 이 영화가 내게 엄청난 공포감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담이 전해주는 공포는 여운이 남고 애잔한 느낌이 나는.. 그래, 기묘한 공포였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상미가 빛나는 스크린은 충분히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성공했고 내게는
꽤 후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잘 만든 공포영화였다. 덧붙여 첫번째 이야기의 덧없는 결혼식 장면의
연출과 두번째 이야기의 섬뜩한 귀신들의 모습, 세번째 이야기의 반전은 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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