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 다섯 살 배기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주검 앞에서 금남로가 떠나가도록 운다. 그 아이 주위로 애국가를 부르던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의 총탄에 맞고 힘없이 쓰러진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의 평범한 시민들은 결국 “민주”를 외치다가 무참히 짓밟혀 버린다.
“아버지! 아버지!” 란 어린아이의 소리가 들렸을 때, ‘대성통곡’을 할법한 관객들. 일일연속극을 보며 아침부터 펑펑 울던 내 여자친구는 인상만 찌푸리고 있다. 학살 장면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저랬었어?”가 아닌, “노력 많이 했다…….”라고 한숨짓는다. 이뿐이었던가? 소박하고 웃음만 짓던 광주 민간시민들이 “총”을 잡던 그 순간, 무기창고가 어딘지? 시간적 배경이 어떤지? 그런 플롯 상에서 꼭 지켜졌어야 하는 것들을 무시당한 체 우리는 정말 저랬다고 믿었어야 했었다. 그리고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처럼 적군의 탱크가 죽음의 그림자처럼 서서히 다가오며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그 순간, 우리는 기다리다가 김 센 나머지 더 이상 흥수(안성기)에게 동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힘 하나 없이 죽는 사람들. 그 전에 흥수가 그들에게 따발총을 겁나게 설명했던 이유는?
영화가 끝났을 적, 우린 그 일을 당했던 광주시민들에게 참으로 송구스러웠다. 5.18을 겪으셨기 때문이 아니다. 그 눈물로 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사건을 “이딴 식”으로 밖에 표현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처음서 부터 끝까지 칭찬할 구석 한군데 없는 영화였다.
기획 초기 취지가 의심스럽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그 사건 자체가 영화다. 그 참극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민주화” “독재정치의 참혹성”말고도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단 하나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관객은 단 하나도 건지지 못한다. 도대체, 청년들이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배우란 말인가?!
감독이 과연 연출을 했는가? 오죽하면 여자친구가 우스개 소리로 “감독님, 촬영할 때 잠깐 식사하러 가셨나? 애들 연기 왜 저러지?” 한다. 이유인즉슨, 감독님 썬그라스끼시고 연기하셔서 연출할 시간이 없으셨단다. 두 코믹배우 빼고는 전라도 사투리 한번 들리지 않는다. ‘택시기사’,’간호사’,’고등학교 학생’ 더 소박하게 만들라고해도 어려울 캐릭터들에서 연기들은 어쩜 그리 기계적일까?
그뿐만이 아니다. 이준기를 둘러싼 고등학생들은 삼, 사십대 장발의 아저씨들이다. 마치 코미디 TV쇼에서 중견 탤런트들이 학창시절 연기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준기는 두발 자유화된 이천년도 고등학생이다. 영화의 리얼리티에 입각한 오류는 수도 없이 많다. 그것을 이해해야 하는가?!
연출-스토리-각본-편집-촬영-프로덕션디자인-음향-음악 이런 오합지졸 영화를 본적이 없다. 실사를 다룬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등등 한국영화가 이룬 성과에 역행하는 영화다. 그것도 한국 근대사에서 제일 극적인 사건을 다루는데서 말이다. 어렵게 이끌어낸 영화적 기회가 처절하게 낭비되고 말았다. 슬프다.
“이야기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특히 민감한 소재거리를 다룬 영화 만들기는 정말 어려운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이것을 제작한 사람들을 두둔하기에는 그들이 너무 크질 않았나? 100억원을 썼다면 프로페셔널한 사람들 아닐까? 적어도 관객들 돈 8000원을 먹는다면 말이다. 흥행영화감독님들! 흥행영화는 흥행영화라서 흥행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성을 갖추어서 흥행하는 겁니다! 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들이 무서워야 할 것은 한물간 “전 대통령” 도 아니고, 영화사 사장님들도 아니다. 바로 “관객” 이다! 우리 영화들은 “관객이 왕”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감독님들 나오셔서 자신들 필라소피를 열변하는 것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과장을 썩는다면, 공주를 웃기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이 날아가는 광대의 심정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랬으면, 이런 영화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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