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드디어 '화려한 휴가'를 보고 왔습니다.
어릴적 간접적으로 겪었던 5.18민주화운동이 영화화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기대감이 개봉 첫날 영화를 보게 만들더군요.
그에 앞서 지난 6월 중순에는 미리 광주에 있는 영화 세트장도 다녀왔습니다.
이래 저래 기대를 나름대로 하고 있었던 영화였단 얘기가 되겠네요.
하지만 그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거기에 한참 못미치는 아쉬움을 영화 상영 내내 보여주더군요.
그저 가끔 머릿속으로만 그려봤던 그날의 참혹했던 모습들을
스크린으로 생생하게 옮겨놔서 약간의 시각적인 쇼크만 있었을 뿐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드라마가 되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차라리 그 당시 10일간의 충격적이고 믿을 수 없는 시간들을 좀더
사실적이고 폭넓게 다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영화상에서는 광주의 모습만 그려졌지만 그 여파가 전남지역 곳곳까지 미쳤었거든요.
호남선은 운행이 중단돼서 기차는 아예 다니지도 않았었고
역 광장에는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규탄집회를
가졌었으며 대중교통수단은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었습니다.
육교 밑에 버려져 있던 유리창이 다 깨져나간 버스 안에서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놀았을 정도였으면 말다한거니깐요.
80년 5월은 초등학교도 안다니던 코흘리개 꼬맹이 시절이었는데,
전남 변두리의 작은 도시에서 살던 그 어릴적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걸 보면
한 어린 아이의 눈앞에 펼쳐졌던 그 광경들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나 봅니다.
광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렇게 간접적으로 겪었던
저도 이러는데 정말 광주시민들은 오죽했겠습니까?
5.18에 대한 직,간접 체험이 없거나 아예 잘 알지조차 못하는
관객들이 본다면 충분히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오겠지만
아쉽게도 너무 정직하게만 그때의 참상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더군요.
영화상에서 그려진 것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다른 한편으로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심도 있게 파고 드는게 부담스러웠다면
차라리 이 영화에서 이도 저도 아닌 드라마를 좀더 짜임새 있게
감성적으로 파고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져봅니다.
뭉클함이 가슴 한곳에서 조금씩 솟구쳐 오를려고 하면 어느새 지루함으로
그것을 무마시켜버리는 영화적 구성도 커다란 마이너스 요인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그나마 그 지루함을 희석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고군분투한 인봉이란
캐릭터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로 노고를 치하하고 싶을 뿐입니다.
문득 그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적어도 제 주관적인 시각에서는
두마리의 토끼를 다 적절하게 잡은 듯해 보이는 '실미도'라는 영화가
'화려한 휴가'를 막 보고난 지금 이 상황에선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비록 영화적인 허구가 많이 가미되었을지언정...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영화 전체적인 포스나 몰입도가
상당히 기대 이하인지라 솔직히 1천만 관객 동원은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런 있을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당당히 맞선 그 분들의 용기와 숭고한 넋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함께 기리고 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끝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총과 대포를 겨누었던, 전 재산이 29만원이라고
당당히 말하던 당대 최고의 싸이코패스인 그가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이
어떠할런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사족으로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확실히 깨달은게 하나 있습니다.
이곳 무비스트 전문가들의 영화평은 자주 나의 감성과 정반대
(어쩌면 대중과 정반대일런지도...)를 향해서 내딛는다는겁니다.
무비스트에서 보기 드물게 아주 후한 점수를 준 '화려한 휴가'였는데...
너무나 당연한거겠지만 역시나 영화 전문가들의 평은 영화를 관람함에 있어서
어떠한 기준의 잣대나 가이드가 될 수는 없다는걸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단지 한 개인이 본 시각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