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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걸>[나쁜남자] 김기덕이 말하는 운명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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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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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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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5 오전 10:12:08 |
2360 |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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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의 이단아, 국제 영화제의 사나이 김기덕 감독. 그의 일곱번째 작품, <나쁜 남자>. 베를린 영화제 3회 연속 본선 진출, <섬>, <수취인 불명>, <실제상황>등 내놓는 작품마다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늘 평단의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그. “쓰레기더미를 헤치면 향기가 난다.” 김기덕 감독의 말처럼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쓰레기더미 같이 어둡고 지저분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자살자의 시체를 숨겨뒀다 유족에게 팔아 넘기는 사람<악어>, 화가가 되겠다고 파리에 온 청해, 관광객에게 사기치는 일로 연명하며 어딜 가도 환영 받지 못하는 사람<야생동물 보호구역>, 창녀, 여대생<파란대문>, <섬>, 혼혈아 <수취인 불명> 그리고 포주<나쁜남자>. 그가 다루는 인간 군상은 분명 사회 속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그들 자신도 사회 속에 어우러지지 못하는 그래서 주변에서 얼쩡거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주로 그리고 있다.
이렇듯 평단의 호평을 받고 사회성이 짙은 작가주의 경향의 작품을 주로 만들어 내는 그.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그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라면 그다지 가리지 않는 나 이지만 그가 다루는 어두운 구석이 많은 인간군상, 어쩔 수 없이 사회의 밑바닥을 살아가도록 운명 지워진 상황이라든지 하는 기본적인 작품 경향들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 실제로 그가 그리는 부류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할 지라도 적어도 영화 속에선 희망을 이야기 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바람이다. 현실은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한번쯤은 영화 속에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든가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영화를 말이다. 그에 반해 그는 시종 우울하고, 냉소적이며, 분노에 찬듯한 시각을 유지한다. 물론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불러 일으키도록 하는 효과를 주고는 있기는 하지만 그의 연출적 시각은 철저히 냉정함을 유지한다. 그래서 가능한 그의 작품은 피해왔다. 영화를 보고나서 느껴질 씁쓸함을 맛보기 싫어서…
하지만 최근 난 김기덕 감독 작품 <나쁜 남자>를 보았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 대한 입소문,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했으며 작품성 또한 뛰어나다는,이 나를 극장으로 이끌었다. 또한 예고편에서 보았던 김기덕 감독의 오랜 파트너 조재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음으로…
이 영화는 상당히 충격적인 포스터로 관객을 압도한다. 도대체 무슨 영화이길래 얼마나 야한 영화이길래 전라의 여성이 거울을 보고있는 포스터를 전면에 내세울까 하는…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그 포스터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거울의 의미도…
사창가 깡패 두목인 한기, 무표정하게 길을 걷던 그의 눈에 비친 천사 같은 여대생 선화.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같은 천사처럼 깨끗한 이미지의 선화에 그도 모르게 이끌려 기습키스를 감행했지만 그의 키스에 대한 대가는 차디 찬 경멸의 눈빛 그리고 모욕. 그 눈빛에 반항하듯 또 한번의 강제 키스를 하지만 그들로부터 돌아온 건 심한 구타와 그녀의 침세레. 하지만 그의 눈빛은 복수에 찬 눈빛이다. 그리곤 자신의 모멸감을 그대로 갚아주듯 선화를 창녀로 만드는 계략에 돌입하는데…
감독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울릴 수 없는 두 남녀를 통해 이른바 '운명의 장난'을 이야기한다. 저 밑바닥 너저분한 환경에서 성장한 한기와 별다른 걱정없이 살아가는 청순한 여대생 선화, 그들의 우연한 만남과 집착 그로 인한 끈질긴 악연으로 선화는 ‘삶이란 원치않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한기는 ‘사랑한다고 소유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나쁜 남자, 한기 그는 과연 나쁘기만 한 남자일까 ? 그가 살도록 운명지어진 저 밑바닥 환경은 그를 사회적으로 나쁜 남자로 만들었다. 선화에게도 나쁜 남자로 다가설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나쁜 남자가 아닌 불쌍한 남자다. 사랑을 느낀 여자를 폭력으로 굴복시켜 곁에 둘 수 밖에 없고 같은 공간에 있으나 다가설 수 없음에 괴로워하는 그 여자로부터 차디찬 멸시만을 당하는, 철저히 배척당하는 불쌍한 남자인 것이다. 그 자신은 동료를 사랑하고, 그의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동료를 위해서 살인 누명도 뒤집어 쓸 만큼 선(?)한 남자인데도 말이다. 내내 한마디 말도 없이 강렬한 눈빛만을 뿜어댔던 한기의 "깡패 새끼가 무슨 사랑이야"라고 외치는 말은 어쩌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처절한 외침이 아닐지…
한기가 선화를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 선화의 방 옆에 마련한 밀실의 거울. 그것을 통해 선화가 매춘하는 모습, 그녀가 철저히 망가져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자신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린 것도 부족해서 그녀가 나락으로 빠지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할 남자. 그의 운명은 그가 태어날 때 짊어진 어두운 운명만큼 비극적이다.
한기와 선화 사이에 놓인 거울, 이 불투명 거울은 선화와 한기와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바라볼 수는 있으나 만지거나 느낄 수 없고 절대로 화합할 수 없는 관계. 사랑을 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서로의 시선 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그들 사이의 벽을 상징한다. 앞에서 말했던 포스터의 의미, 선화와 한기, 그들은 포스터에서 조차 거울을 통해서만 마주할 수 있다. 그건 아마도 절대로 화합할 수 없어서 서로의 뒤만 바라보아야 하는 그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술에 취한 선화를 그녀의 방에 눕히고 그녀와 처음으로 마주한 그. 그녀가 갑자기 그에게 부드러운 얼굴로 다가온다. 하지만 부드러웠던 얼굴은 먹을 술을 이기지 못한 구토를 하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변한다. 그렇다. 그들은 한 방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느끼지 못하고, 있더라도 거울을 통해서만 얼굴을 부비고 볼에 입술을 맞출 수 있고 힘겨워 하는 얼굴을 다독거려 줄 수 있는…. 마치 그들은 절대로, 결코 이 세상에선 화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신의 의지 인 것처럼… 여담일지도 모르지만 영화 속의 거울은 영화 <파리 텍사스>에서 사용된 반투명 거울의 이미지와 아주 흡사하다. 창녀가 되어버린 상황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오랜 세월을 떨어져 있었던 세월의 간격 때문에 화합하지 못하는 제인과 트래비스사이의 마음의 벽을 말이다.
이 영화에선 사창가 외의 장소로 유일하게 바닷가가 등장한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 사람들은 미래를 계획한다거나 과거의 묵은 짐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다짐을 하곤 한다. 한기는 사창가로부터 도망을 친 선화를 바닷가에 데려온다. 마치 그녀의 예전의 모습을 모두 바닷가에 던져버리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듯이. 바닷가에서 바다를 향해 빠져들어가는 여성은 아마도 선화의 과거의 모습이리라. 그리고 그녀의 과거는 거기서 물속에 가라앉아버렸다. 그리고 (물속에 빠져버린) 그녀가 버린듯한 갈갈이 찢겨져 버린 남녀의 사진, 얼굴 부분이 빠진 이 사진은 선화의 과거와 현재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없어져 버린 조각은 과거의 사랑으로 나중에 드러난 한기의 모습은 현재의 사랑으로 생각된다.) 조각난 사진을 붙여서 한기가 늘 그녀를 바라보는 거울위에 붙이며 그 찟겨진 틈으로 보여지는 선화의 한기의 얼굴은 어쩌면 이젠 그들이 운명적으로 엮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더구나 찟겨 진 조각의 남자가 한기와 선화의 얼굴로 발견되면서 어쩜 그들은 처음부터 운명적인 관계였다는 걸 우회적으로 이야기 하는 건 아닌지… 그녀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녀의 운명적인 남자는 한기뿐이라는 것을…. 어쩌면 신에 의해 운명 지어진 남자는 처음부터 한기라고 이야기 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가족이 있는 동료를 대신해 사형선고를 받는 한기 하지만 운명은 만만하게 어쩌면 편해 보이는 그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절규하는 선화의 절규를 통해서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고, “이렇게 죽게 놔둘 수는 없다”고. 어쩔 수없이 운명적인 동반자인 것처럼 한기와 선화는 바닷가에서 재회한다. 이젠 서로를 의지하여야만 세상을 살아가야 할 수 밖에 없는 그들. 트럭의 뒤에 밀실(?)을 차리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이동하면서 매춘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쩌니 사창가에서의 모습보다는 평화롭다. 적어도 그들은 같이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 아님 이젠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체념일까 ?
김기덕 감독이 말하는 운명론은 너무도 냉소적이다. 그래서 그 시각이 너무도 냉정해서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은 그다지 편하지 않다. (물론 그런 운명에 놓은 그들의 모습은 추악하다거나 불순하게 표현되는 건 아니지만.) 한기를 표현한 감독의 의도가 그를 나쁜 남자로 해석하라는 이야기인지 불쌍한 남자로 해석하라는 건지, 또 그런 상황에, 입장에 놓인 선화의 삶이 과연 나쁘기만 한 건가를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지도 그의 진정한 의도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가 말하는 메시지는 아마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지. 하지만 꼭 그렇게 극단의 상황에 놓여진 인간들을 보여주면서 해야 하는지, 꼭 그런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체념할 수 밖에 없는 정말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감독이 작품을 통해 표현해야 하는 부분일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김기덕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시각이 조금만 더 부드러워 졌으면, 그가 관심있어 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비록 사회의 주변인 이지만 희망적인 모습을 그려주었으면 하는 것이 김기덕 감독에 바라는 나의 소망이라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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