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쩌라고???
윌터의 평온한 일상은 자신의 생일날 아내가 사온 한권의 책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다. 저자도 출판사도 불분명한 책인 <넘버 23>은 '숫자 23의 법칙이 만물을 움직인다'는 전제에서 모든 이야기를 풀어간다. 윌터는 책을 읽으면서 책의 주인공인 핑거링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는데, 생년월일과 주민등록번호 등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숫자 23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월터는 착란에 빠져 애인을 살해한 소설의 주인공 핑거링처럼 자신도 아내를 살해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떤다. 결국 책의 저자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 월터는 자신 앞에 펼쳐지는 잔혹한 진실과 마주 서게 된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닌 사람이든 수의 조합이 가져오는 기기묘묘함은 그 자체로 충분한 흥미거리를 제공한다. 이를테면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박사는 가정부의 신발크기나 생일 등 모든 것을 숫자로 풀어서 설명하며, 이는 보는 관객에게도 묘한 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또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해 유포된 신비한 숫자 <142857>의 조합과 같은 것들.
문제는 일반적으로 이런 기기묘묘한 수의 조합이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며 흥미를 가져오기는 하지만(좀 더 크게 본다면 음모론) 그렇다고 그것이 나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매개고리 역할을 하게 되는 걸 상상한다는 건 힘들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영화는 '세상을 지배하는 숫자 23의 법칙'과 '살인'이 대체 어떤 필연적 관계가 있는지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다. 그래서 열심히 '숫자 23'을 따라가다보면, 살인의 진실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 때부터 세상을 지배하는 숫자 23은 그저 <숫자 23>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숫자 23의 법칙> 때문에 미쳐서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대체 왜 그것이 그럴만한 동기를 제공하는 것인지 의아해진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스릴러로서의 미덕보다는 살인이라는 잔인한 범죄 앞에서도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사랑 이야기가 더 가슴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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