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골적 스포일러 있습니다 -
얼마전 한 보험광고가 세간에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10억을 받았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가장이 세상을 떠났음이 암시되는 한 가정의 평화로운 일상을 담은 광고. 시청자들은 그 뒤에 가장의 죽음이라는 현실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고 있는데도 10억을 받았다는 얘기부터 꺼내며 너무나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그리고 어느새 그 가족 틈에 끼어 있는 보험설계사의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불행을 극복하고 다시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로 만들었겠지만, 한 사람의 죽음 뒤에 펼쳐지는 그 행복한 모습이 이상하게 소름끼치게 다가온 건 왜였을까.
보험이라는 것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짙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가족의 죽음으로 남은 사람들이 덩달아 좌절하며 삶을 포기하게 하지 않고,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긍정적인 점이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엄연한 사람의 목숨이 죽음 이후에 돈으로 환산된다는 사실에 다소 비정한 면모마저 느끼게 한다. 영화 <검은집>은 이렇게 우리 생활 속에 서늘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보험이라는 도구를 끌어와 그 주변에 있는 인간의 양면성까지 함께 이야기하는 영화다. 인간이라는 똑같은 생물을 두고 누구는 성선설을 주장하고 누구는 성악설을 주장하듯이.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 이후 마음 한 구석에 정신적 상처를 안고 사는 보험회사 직원 전준오(황정민). 첫 출근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불만상담 건으로 박충배(강신일)라는 남자의 집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 집 아들이 목을 매 목숨을 끊은 모습을 목격한다. 그런데 다소 미심쩍은 태도를 보이다가 장례를 치르자마자 보험금 청구서를 내미는 충배의 모습에 준오는 이것이 단순 자살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조사에 나선다. 아니나다를까 충배의 아내인 신이화(유선)의 이름으로도 보험이 가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준오는 충배가 이화마저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사건을 조사하는 와중에 준오는 "사이코패스"라는 새로운 개념을 접하게 된다. 그 어떤 감정도 없기 때문에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지금 상황으로 봐선 준오가 맞서고 있는 상대도 사이코패스인데, 과연 준오는 이 대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황정민의 배우로서의 가치가 워낙에 현재 최상을 달리고 있기 때문에 홍보과정에서는 "황정민의 첫 공포 스릴러"라면서 황정민의 출연을 강조했지만, 사실 황정민의 연기는 무난한 정도이다. 물론 이것은 황정민이 연기를 밋밋하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맡은 전준오라는 역할의 특성상 무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크다. 호러나 스릴러 영화에서는 웬만큼 특출난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선한 편에 서는 주인공보다는 악한 편에 서는 반동인물의 연기가 더 두드러지게 보이기 마련이기 떄문이다. 황정민이 맡은 전준오라는 인물 역시 이제 막 보험회사에 첫 출근한 아직 능숙하지 못한 직원으로서 눈앞에 펼쳐지는 끔찍한 현실에 과거의 기억이 겹치며 겁을 먹게 되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기억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정신질환이라고 앓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아서, 내면의 상처를 그저 속으로 삭이고 끙끙 앓는 성격이다. 그런 성격으로 인해 과거의 상처를 외부로 왜곡되게 드러내는 대신 다시는 그 상처와 마주하지 않기 위해 점점 더 선의 편으로 다가서는 인물이고, 때문에 감정 하나 없이 싸늘한 시선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상대방보다는 당연히 상대적으로 극적 카리스마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황정민은 이 영화에서 여전히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되, 다만 역할상의 제약으로 크게 두드러진 연기는 보여주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두드러진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은 황정민과 맞서는 이들인 신이화 역의 유선과 박충배 역의 강신일이다. 특히 유선이 보여주는 일체의 감정의 흔들림도 없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은 영화가 주로 전달하는 공포의 정서를 온전히 짊어지고 있다고 느껴질 만큼 그 존재감이 절대적이었다. 절뚝거리며 어떨 땐 느릿느릿하다가 어느 순간 빨라지며 사람 심장 잔뜩 조여오는 움직임, 거기에 정말 인간의 감정은 싹 걷어가 버린 듯 건조하고 서슬퍼런 눈빛, 특유의 이지적인 분위기에 메마른 느낌을 더욱 강조한 말투까지 어우러져 사이코패스 여인의 잔혹하고 비정한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다. 오죽했으면 후반부 클라이맥스 추격신에서 특별히 시각적 자극 세례가 없더라도 다크 포스를 잔뜩 움켜진 유선의 존재감만으로도 시종일관 긴장감이 효과적으로 유지될 정도다. 그만큼 유선의 연기는 영화가 강조하고자 하는 사이코패스라는 소재의 카리스마를 상당히 잘 표현한 듯 싶었다. 강신일 또한 이전 영화들에서 다소 엄격하게도 느껴지지만 사람 좋으신 옆집 아저씨같은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악에 받친 듯 싸늘한 눈빛을 품고 있는 미스터리한 남자의 모습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영화는 그 어떤 감정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통해 1차적으로는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며 장르적 특성을 강조한다. 더구나 이렇게 감정이 없는 존재가 귀신이나 사이보그도 아니고 우리 곁에서 똑같이 숨쉬고 있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 공포는 커진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준오와 맞서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모습은 그 무서운 귀신도 어떨 때는 넘어가는 설득과 협상이라는 방법도 절대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저 불도저처럼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 사람들의 목숨을 쳐내는 모습이 꽤나 섬뜩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그런 사이코패스의 잔혹한 면을 한국 공포영화치고는 상당히 센 강도의 비주얼을 통해서 어느 정도 피부에 와닿게 전달한다. 헐리웃에서 나온 슬래셔 호러같은 영화들에 비해서 두드러지는 정도는 아니지만, 호러 매니아가 아닌 일반 관객들에게는 꽤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장면들이 꽤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이미지를 통해 사이코패스의 비정함을 강조하고, 그 반대편에 선 준오가 상대적으로 더욱 선한 편에 다가가 맞서는 모습을 대비시키며 영화는 이야기에 있어서 쓸데없는 곁가지를 치지 않고 준오와 사이코패스 범인의 대결에만 신경을 집중한다. 때문에 영화는 미스터리 구조를 띠고 있다 하더라도 관객들에게 혼란을 좀 덜 줄 수 있는 쉬운 이해를 효과적으로 유도하며, 둘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긴장감도 꽤 능숙하게 자아낸다.(특히 진짜 범인은 이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 준오가 그 이후 처음으로 회사 사무실에서 이화와 마주치는 순간의 절정에 달한 긴장감이란;;) 그 긴장감은 마지막 "검은집"에서의 쫓고 쫓기는 장면에서 극대화되며 관객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시종일관 캄캄한 어둠을 고수하기 때문에 자칫 졸음을 유발할 수 있음에도, 쫓고 쫓기는 두 세력의 침이 바싹 마를 심리에 포커스를 맞추고 또 중간중간 등장하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관객들의 집중력을 흐트리지 않고 어느 정도 붙잡아준다. 다만, 이 집 안에서의 추격전이 다소 정적으로 진행된 것은 못내 아쉬웠다. 관객으로 하여금 침만 꼴깍 삼키게 하는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건 좋았으나, 그렇게 잔뜩 긴장한 관객에게 한번 제대로 몰아붙이는 속도감 있는 추격전도 비중있게 표현했으면 제대로 된 공포를 선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게다가 밀폐된 공간이니 그 공포감을 더욱 커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소 정적인 대치 상황이 주가 되어서 뭔가 큰 한 방이 부족했던 것 같은 아쉬움도 느꼈다.
또한 사이코패스라는 꽤나 새롭게 느껴지는 캐릭터의 공포영화적 파괴력은 어느 정도 느껴지지만, 이 사람이 어떤 점에서 다른 공포영화 속 적들과 대비가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족했던 점도 아쉽다. 아무리 사이코패스가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지만 그가 왜 돈을 그렇게 원하는지, 아니면 혹시 그의 사이코패스적인 면모가 선천적인 게 아니라 후천적, 환경적 요인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반면에 후반부 클라이맥스에 가서 여느 헐리웃 호러 영화 속 살인마처럼 잡초같은 생명력을 과시하는 부분에서는 공포영화 속 살인마로서의 파괴력을 극도로 강조한다. 물론 이유없는 무차별적 살인은 그 자체로도 끔찍하긴 하지만 사이코패스 범인이 품고 있는 욕망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공포감을 유발하기에, 이 사이코패스라는 캐릭터의 파괴력은 어느 정도 발휘되지만 그만의 깊은 개성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몇몇의 약점 속에서도 이 영화가 사이코패스라는 독특한 소재를 단지 공포영화의 또 하나의 매력적 소재로만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탄탄한 원작의 힘도 컸겠지만 같은 원작으로 만들어진 일본판 영화가 한국판만큼 공포스릴러적인 면이 강조되지는 않은 점을 볼 때 감독이 충분히 자기 재량으로 원작에 어느 정도 손을 댈 가능성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러한 인간에 대한 메시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할 만한 점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는 과거의 상처 속에서 허덕이는 준오와 사이코패스의 대결을 통해, 사이코패스라는 괴이한 성격은 우리가 단지 남일 보듯 지켜볼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 내재되어 있는 특성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나름 진지한 고찰의 기색을 보인다. 이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되는 보험이라는 것부터가 인간을 살리기 위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영화 속 사건들처럼 인간의 죽음을 부를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준오는 어린 동생의 죽음을 바로 눈 앞에서 목격한 유년기의 기억으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상처를 받고 밤마다 잠을 못이룬다. 그러면서 준오는 그런 과거의 상처를 반항이나 광기로 왜곡되게 표출시키기보다 다행히도 다시는 그런 아픈 기억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가다듬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은 그렇게 고통으로부터 피하려는 준오를 끊임없이 양면성의 현장으로 꺼내놓는다. 사람이 죽음을 맞이할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하는 보험회사에 일하면서 고객의 자살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전화를 통해 얘기하고, 동생이 죽음을 맞을 당시 사실은 자신도 동생의 죽음을 바랐던 걸지도 모른다는 무언의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준오의 모습에서, 제 아무리 선의 모습에 가까이 가려 해도 뿌리칠 수 있는 이중성을 어느 정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소 무모하더라도 타인의 불행과 위험을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이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그의 모습은, 양면성에 휩싸여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 중에서 그래도 선에 가장 가까운 긍정적 모습이 아닐까 싶다.
반면에 사이코패스는 그렇게 양면성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 중 가장 부정적인 형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을 향해 가는 대신, 철저히 자신의 욕망과 본능을 따른다. "사이코는 그저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거지만, 사이코패스는 사람을 죽이면 돈이 나온다는 걸 알기 때문에 죽인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사이코패스는 단순히 제3세계에 사는 듯한 이상성격을 가진 게 아니라, 누구나 갖고 있을 욕망과 도덕 사이의 갈등 끝에 자신의 욕망을 극대화시킨다. 그것이 설사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못한다한들, 아니면 그 욕망을 이루는 과정이 비도덕적이라 한들 상관없다. 그저 욕망을 이루면 끝일 뿐. 이렇게 사이코패스는 똑같이 욕망과 도덕 사이에서 한때라도 갈등했었을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서, 사이코패스의 이상행동을 그저 남일보듯 손가락질하며 지켜보는 우리에게 "사실 너희도 한편으로는 이런 모습을 갖고 있지 않느냐"고 반격한다. 그래서 결국 영화 속 사이코패스를 바라보는 눈은 단지 타인에 대한 혐오감과 공포감을 넘어서 우리 자신을 향한 공포감과 비애감으로 변해 돌아온다. 그렇게 결국 우리가 흔히 "인간이라면 마땅히 느껴야 한다"고 믿는 인간을 향한 최소한의 애정과 도덕률을 갖지 못한 채 오로지 자신의 욕망에게만 매달리고, 그로 인해 남의 생명은 물론 자신의 생명마저도 위험한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은, 그렇기에 섬뜩하면서도 한편으론 비극적이기도 하다. 자기 욕망에 최소한의 인간성과 타인은 물론 자신의 목숨마저도 완전히 버렸기 때문에.
이처럼 <검은집>은 완성도 면에서 완전히 탄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공포 스릴러로서 주는 두 극단적 캐릭터의 대립을 통해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며 장르적 재미에 웬만큼 충실하면서도,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메시지에도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은 영화다. 단지 우리와 같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매우 낮은 것일 뿐, 전혀 없는 게 아니라고 경고한다. 결국 영화에서 준오와 사이코패스의 대립은, 한 인간에서 빠져나온 두 개의 극단적 자아의 충돌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남은 자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 건네지는 10억의 보험금에서도 어딘가 비인간적인 섬뜩함을 느끼듯, 당연히 타인을 측은하게 여기는 듯한 우리의 심장 한가운데에도 얼음장 같은 부분이 존재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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