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패기만만한 시도...
8억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삼거리극장>은 뮤지컬이라는 낯선 형식 이외에도 마치 팀 버튼의 세계를 연상시키듯 키치적이고 몽환적 분위기가 매력적인 영화다. 천둥번개가 치던 어느 날, 소단(김꽃비)의 할머니는 영화를 보러 삼거리 극장에 가겠다며 집을 나선다. 소단은 할머니를 찾아 헤매다가 삼거리 극장에서 매표원 구인광고를 보고 매표원이 되어 극장에서 할머니를 기다리기도 마음 먹는다. 하지만 할머니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 어두운 극장엔 4명의 혼령이 '유랑극단'이라며 돌아다니고, 극장 사장인 우기남(천호진)은 걸핏하면 자실을 시도한다. 매일 밤 혼령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밤의 축제를 벌이던 소단은 사장, 혼령, 할머니가 40년대에 <소머리 인간 미노수 대소동>이라는 한국 최초의 괴수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단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게 된 극장을 살리기 위해 감춰져 있던 옛날 필름을 찾아 혼령들과 함께 이 영화를 개봉한다.
<삼거리 극장>은 저예산으로 제작된 만큼 출연진은 천호진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 중심이며, 그것도 삼거리 극장이라는 유일한 장소를 배경으로 제한된 인원만이 나오다보니 작은 스케일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점이 기존 영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시도도 가능함을 말해주기도 하는데, 귀신의 출현으로 기절하는 사람들이 속출하자 경찰과 아마도 119가 출동한 듯 싶은데, 끝끝내 응급차량은 보여주지 않고, 우렁차게 경찰 사이렌을 울리는 경찰 자전거(?)가 천호진을 뒤에 태우고 사라지는 장면은 매우 신선하고 재밌다.
그리고 뮤지컬이다보니 신나는 노래와 춤이 귀와 눈을 자극한다는 것도 이 영화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즐거움이다. 특히 '똥싸는 소리'의 거침없이 내 뱉는 노래는 이 영화의 백미랄 수 있으며, 영화 속 영화로 등장하는 <소머리 인간 미노수 대소동>은 그 자체로 포복절도할 웃음을 선사하는데, 흑백필름과 변사의 활용은 전계수 감독의 한국 영화 전통에 대한 존경 내지는 사랑의 표현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새로운 시도다보니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부분들도 많다. 우선 소단이 할머니를 찾아 극장에 와서 매표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늘어지고 지루하다는 점이다. 다른 씬의 시간도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졌는데, 좀 더 빠른 편집이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뮤지컬임에도 사용된 노래 곡수가 9곡으로 익히 보아오던 헐리웃 뮤지컬에 비해 대략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도 뮤지컬로서의 장점을 감소시키는 지점이 아닌가 한다. 스토리로 볼 때도 왜 혼령들이 삼거리 극장에 남아 있는지도 의문이고, 이유없이 퉁명스럽던 소단이 뚜렷한 계기 없이 혼령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어울리는 것도 좀 생뚱맞아 보인다.
현재 한국 영화의 침체를 보고있자면 2006년은 촛불이 꺼지기 전에 마지막 불꽃을 내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만큼 100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되고 개봉되었던 2006년은 제작 편수가 많았다는 점 말고도 한국영화에서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뮤지컬 장르가 본격 시도되었다는 점으로도 기억될 만한 해일 것이다. 그 첫 테이프는 본격 뮤지컬은 아니지만 일부 뮤지컬 형식을 차용한 <다세포 소녀>로부터 시작되었다. 인터넷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다세포 소녀>는 그 전복적인 스토리와 노골적 B급 감성에 낯설어하던 관객의 혹평에 무너져내려야 했고(물론 주연배우의 설화도 한 몫했지만), <다세포 소녀>에 이어 본격적인 뮤지컬을 표방한 <구미호 가족>과 <삼거리 극장>이 연이어 개봉했지만 흥행에 있어서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보통 위기 국면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자제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즉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되는 쪽으로 편중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자니 작은 예산으로도 나름의 성적을 낼 수 있는 코미디 장르의 과다 편식이 예상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편중현상이 기존 영화팬을 한국영화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한다는데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의 개념으로 <삼거리 극장>과 같은 새로운 시도가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