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이런 영화 보게 해줘서....
<뜨거운 녀석들>은 2004년 자칭 로맨틱 좀비 코미디라고 일컬은 <숀 오브 데드 : 새벽의 황당한 저주>로 평단과 관객의 극찬을 받은 에드가 라이트 감독, 사이몬 페그, 닉 프로스트-이 3인방이 새로 뭉쳐 만든 액션 코미디 영화다. <뜨거운 녀석들>을 보다보면 3인방의 전작이 아른거리기도 하지만(예를 들면,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 고릴라 흉내를 내던 닉 프로스트는 <뜨거운 녀석들>에서 고릴라 인형을 선물로 받고, 나무 울타리를 넘지 못하고 넘어졌던 사이몬 페그는 멋지게 울타리를 뛰어 넘는다. 그것도 붕붕 날으며. 거기에 <새벽의 황당한 저주> DVD가 던져지는 애교까지) 굳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볼 필요까지는 없다. 온갖 장르를 넘나 들며,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이 여기저기 경쾌하게 등장하는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충분히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유능하다는 이유로 한적한 시골마을 샌포드(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고향이며 사이몬 페그 고향과 가까운 거리라고 함)로 전출 당한 니콜라스 엔절은 초콜릿 케잌을 먹는 게 중요한 일과인 동료 경찰 틈에서 무료한 나날을 보낸다. 특히 동료 경찰인 순둥이 대니 버터만과 함께 집 나간 백조나 잡으러 다니는 자신의 처지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으며, 더군다나 분명히 연쇄 살인 사건임이 분명한 살인 사건을 동료 경찰들 모두 단순 사고사로 우기기까지 하는 것에는 답답함을 넘어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니콜라스는 동료 경찰들과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혼자 사건 수사에 착수, 점차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고, 그럴수록 그는 위험에 빠져든다. 니콜라스가 살인사건의 진실에 접근해가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액션을 선보이는데, 여기에 수많은 영화들이 동원된다. 우선 영화 제목과 포스터에서부터 영향을 받았음이 확연히 드러나는 <나쁜 녀석들>과 <폭풍 속으로>. 거기에 <레옹> <다이하드> <저수지의 개들> <첩혈쌍웅> <코만도> 등 많은 액션 영화들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본듯한 많은 장면들이 스크린을 장식한다. 특히 <폭풍 속으로>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우정 때문에 도망가는 패트릭 스웨이지를 차마 쏘지 못하고 총구를 공중으로 향해 쏘는 장면의 뻔뻔하면서도 노골적인 흉내내기는 이 영화 패러디의 백미라 할만하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킥킥대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우삼을 떠올리게 하는 날아서 쌍권총을 발사하는 장면에선 비둘기 몇 마리도 같이 날렸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이들 3인방의 전작인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도 좀비들이 내장이 파먹는 장면 등 고어틱한 잔인한 장면이 등장했는데, <뜨거운 녀석들>에서도 꽤나 잔인한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테면 길거리에 목이 굴러다닌다거나, 성당에서 돌이 떨어지는 장면들. 굳이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는 한데, 어쩌면 이들 3인방의 취향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뜨거운 녀석들>은 영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경찰 영화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과 사이몬 페그는 한 인터뷰에서, 만일 영국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제리 브룩하이머를 떨어뜨리면 굉장히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액션, 호러, 스릴러 장르 등이 뒤섞인 이 영화가 주는 재미로 말하자면 최근에 본 오락영화 중 최고라고 찬사를 보내 마땅하지만, 이 영화의 진가는 어쩌면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영국의 보수층-영국만이 아닌-에게 던지는 신랄한 메시지 때문에 더 빛나 보인다. 그건 다름아닌 타자(他者)에 대한 거부감, 이상적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배제하는 그들의 평화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며, 날카로운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나쁜 녀석들>은 유럽사회의 이민제한 정책을 직접 거론하고 공격한 <칠드런 오브 맨>의 영국 시골 샌포드 코미디 버전이라 할만하다.
※ 미리 알고 보면 재밌는 사실들
- 이 영화에는 많은 유명 인사들이 단역 또는 카메오로 출연하고 있다. 우선 <러브 액추얼리>에서 노장 롹가수로 출연했던 빌 나이히가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좀비역에 이어 <뜨거운 녀석들>에서는 니콜라스를 시골마을로 전출시키는 경찰로 출연한다. 마을의 대형 슈퍼마켓 사장으로는 제임스 본드 출신의 티모시 달튼이 출연해 음흉한 웃음을 흘린다. 그 이외에는 유명하다고는 하는데 영국 배우들이라서 그런지 익숙한 얼굴들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
- 무엇보다 카메오로 출연한 피터 잭슨과 케이트 블란쳇을 찾아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둘 모두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매니아를 자처한다고 하는데, 영화 초반 니콜라스를 공격해 손에 상처를 입힌 산타클로스가 바로 피터 잭슨이다. 그렇다면 연기파 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어디에 나왔을까? 바로 니콜라스의 헤어진 여자친구 재닌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니콜라스가 재닌을 찾아갔을 때 감식반원인 재닌은 마스크로 얼굴을 다 가린채 작업 중이어서 누군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과 사이먼 페그는 이 장면의 시나리오를 쓰며, 농담삼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여배우를 캐스팅해서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 거야'라며 낄낄 웃었다고 하는데, 얼마 뒤에 감독이 우연히 한 파티에서 케이트 블란쳇을 만났고, 그녀가 자신의 영화에 대한 팬이라는 사실을 알고, 카메오 출연을 요청, 그 자리에서 성사됐다고 한다. 그것도 무보수로. 영화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감독과 배우를 카메오로 출연시켰으면서도 얼굴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이들을 과연 또라이라고 해야 할지, 천재라고 해야 할지....
- 경찰서 앞에서 무료하게 책을 읽고 있는 경찰은 나중에 드러나듯이 쌍둥이 경찰이다. 이 역할은 영국의 코미디언 빌 베일리가 1인 2역을 했다고 하는데, 그들이(?) 읽고 있는 책은 한권은 이언 뱅크스의 책이며(추리소설 <공범>), 다른 한 권은 이언 M. 뱅크스의 책(제목 미상)이라고 한다. 물론 두 작가는 동일인물인데, 뱅크스가 이름 중간에 M자를 붙일 때의 소설은 SF 장르에 속하는 책이라고 한다. 쌍둥이 캐릭터에 사실상 동일 작가의 책을 읽게 한 절묘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 립 서비스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뜨거운 녀석들>을 만들기로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친 영화로 <더티 해리> <프렌치 커넥션> <첩혈쌍웅> 등을 꼽으며 한국영화인 <살인의 추억>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에드가 라이트 감독에게 <살인의 추억>을 보여줬다고 하는데, 에드가 라이트는 <살인의 추억>을 보고 완전히 매료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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