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한줄로 표현하자면
송강호를 위한, 송강호에 의한, 송강호의 영화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송강호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위의 포스터의 카피라이트가 너무 와닿는다. 웃어라, 아버지니까...)
영화 내용은
조폭을 직업삼은 가정을 둔 중년의 가장이 가족과 가족과 직장(?)에서 겪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
분명 혹자들은 '아~ 또 조폭인가...'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분명 조폭은 이제 지겹다. 짜증이 날 정도로 지겹다.
하지만 송강호라는 배우의 파워가 실로 대단해서 보게 되었다.
결론은 식상한 조폭이 소재로 등장하지만 주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특별한 직업의 아버지를 만들기 위해 빌려온 소재이고
주제는 가족이다. 그리고 아버지...
이전의 부성애를 드러내면서 눈물질질짜게 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신파는 약간만 있고 대부분 유머러스한 장면으로 넘어가지만
아버지라면...아니 남자라면...집안의 가장이라면 공감을 느낄 수 있다.
(필자도 아버지도 가장도 아니지만 너무나 큰 공감을 얻었다. 역시 부성애는 ㅠ_ㅠ)
이 공감은 '송강호'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아니면 이 역에 맞는 배우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연기는 완벽했고 너무도 딱 맞았다.
대사인지 아닌지 모를 중얼거림은 리얼리티의 극치를 달리고 있고
무능해 보이고, 의기소침해 보이고, 불쌍해 보이는 연기는 이미 극에 달했다.
사실 위와 같은 연기라고 하면 최민식도 생각나긴 하는데 이 영화에서의 '강인구'를 봤을때
최민식보다는 송강호가 싱크로율 100%아니...120%를 보여준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엔 송강호만 있는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어릴적 김규철씨와 부부로 나와 연기했던 드라마 [당신이 그리워질때]에서
단비 엄마로 연기했을때부터 너무도 좋아한 박지영. (그게 벌써 14년전... 필자 5학년때...-_-;)
그녀의 단아한 모습은 한국형 미인의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강인구의 부인 허미령역으로 영화는 처음이라고 하는데 십수년의 연기경력은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송강호의 고등학생 딸내미 강희순역의 김소은.
아빠 구박 전문배우인가...이전 무능한 가장의 이야기 [플라이 대디]에서도
아빠를 구박하는 딸내미로 나오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이번엔 구박을 넘어서 '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고 외치는 못된 딸내미.
아직은 연기의 어색함이 묻어난다. 연기연습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강인구의 갈등 원인 주범.
강인구의 친구이지만 직장(?)상사이며 인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노 상무역의 윤제문.
내가 그를 기억하는 그의 출연영화는 [남극일기], [비열한 거리]. [괴물]이다.
대부분 좋은 역은 아니었다. [남극일기]에선 원인모를 바이러스에 걸려 동료를 의심하다 죽고,
[비열한 거리]에선 부하의 돈을 삥땅치다 살해당하는 못된 중간 보스,
[괴물]에선 노숙자로...(뭐 물론 괴물 처리에 크나큰 공헌을 하지만...)
사실 인상이 좋은편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선한역보다는 악역으로 유명세를 탔다.
연극으로 갈고 닦은 연기실력으로 카리스마있는 조직의 똘마니도 아니고 중간보스를
정말 잘 어울리게 소화해낸다.
오달수도 물론 조연이긴하지만 그리 비중이 없다.
어릴적부터 같이 자란 친구이지만 서로 다른 직장(?)에 근무하고 있다.
그 직장이 직장인지라 서로 다른 직장끼리는 으르렁거릴 수 밖에 없지만
둘은 만나면 티격태격하면서도 장난치며 노는 그냥 오랜 친구일 뿐이다.
오달수 치고는 별로 비중없는 조연이라 그리 두각을 나타내진 않는다.
영화는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아버지 이야기이다.
특별한 직장을 다니지만 집장만과 아이들의 교육에 고민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여느 아버지의 모습과 같다.
밖에서는 그 무섭다는 조폭의 중간보스이지만 집안에선 딸내미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아무말 못하는 소심한 가장이다.
깡패짓해 번돈으로 아들 딸내미 유학보내고, 거액의 큰 집도 장만하지만
그는 혼자 그 큰집의 마룻바닥에 홀로 앉아서 불어터진 라면을 먹는 신세다.
한국가정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얼굴을 마주치는 시간이 적은 아버지의 소외감은
20세기말부터 시선을 받고 있었다. 예전 김정현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열풍은
그당시 고개숙인 가장의 모습을 그리면서 아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뒤로 아버지에 대한 영화도 종종 나왔지만 모성애의 파워에 눌려 그리 주목은 받지 못했다.
한재림 감독은 결코 우아하지 못한 그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우아한 세계]라는
반어적인 제목을 붙여주며 한국의 아버지들의 우아함을 느끼게끔 해준다.
우아한 직장, 우아한 남편, 우아한 아버지, 그리고 우아한 불은 라면...
과장도 없고 신파도 없지만 공감을 이끌어 내는 영화의 멜로디는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에서 맘에드는건 과장도 신파도 없다는 것이다.
일부러 가슴찡하게 하려는 연출이 없다. 그냥 자연스러움에서 묻어나는 그런 한재림 감독의 말대로
'생활 느와르' 그것이다.
첫 장편 영화 [연애의 목적]으로 호평을 받았던 한재림 감독은 장래가 기대되는 신인 감독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연애의 목적]을 너무도 재밌게 봤기에 이 영화에도 기대가 컸다.
제작소식을 들었을때 '아...또 조폭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송강호니까 뭔가 다르겠지...'했다. 다르긴 달랐다. 조폭이 분명 소재로 쓰였으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조폭은 그저 소재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밖에선 당당하지만 집에선 소심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기엔
조폭이 가장 적절한 소재였을지도 모른다.
조폭이라는 소재는 식상하지만 조폭을 소재로 안썼다면 영화가 식상했을 것이다.
영화는 그간의 기대에 맞게 좋은 영화로 나왔다.
하지만 기호와 취향에 따라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않게 나올듯하다.
우선은 조폭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조폭 미화'라고 볼 수 도있을 듯하고,
송강호가 왠지 싫은 사람도 적지않으니...
그래도 좋은 영화다.(개인적으로 볼땐 말이지...)
현재 국내 최고의 티켓파워를 지닌 배우 송강호의 주연으로 관심을 받고
[연애의 목적]으로 주목받은 한재림 감독의 두번째 장편이고
'생활 느와르'라는 보도 듣도 못한 장르를 붙인 덕에 현재는 흥행은 양호하게 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 주춤해진 한국영화를 잠시나마 주목받게 할 영화로 손색이 없지만
5월부터 여름내내 융단 폭격으로 쏟아지는 할리우드 초거대작들이 기다리고 있어
그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듯하다. 짧지만 그 짧은 동안에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개봉하는 가족영화 말고는 여름까지 개봉을 꺼려하는 한국영화시장이 안타깝다.
영화는 장삿속으로 만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영화를 사영하는 극장은 장삿속으로 영화를 상영하니...
여름 대공습이 시작되기전에 좋은 한국 영화들이 많이 선전했으면 한다.
(written 07.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