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영화매력을 잘 이용하는 감독 중 하나이다. 이냐리투 영화에서 나타나는 영화의 매력이란 공간과 시간인데 감독은 영화라는 예술매체를 통해 그것을 드라마틱하게 주무를 줄 안다. 넘나드는 시간과 공간 그안에 녹아있는 인간 내면의 소리는 스크린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차고 넘친다.
데뷔작인 ‘아모레스 페로스’에서 보여주었던 끈질긴 삶의 애착과 악착 같은 삶의 시선은 21그램에 가서 더 깊어진다. 건조한 삶을 섬세하고 깊게 관찰한 낸 감독은 인간 내면의 고통스러운 소리를 도려내어 우리에게 들려주었고 충분히 쓰라리게 다가왔었다. 두 영화 중심에는 물렁한 심장을 가지고 힘겹고 위태롭게 박동하며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서있었다. 세 번째 장편영화인 바벨에서는 시선이 더욱 넓어졌다. 4개국에서 6개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 감독은 많은 인물들을 불규칙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묶어버린다.
모로코에서 두 아이의 장난 삼아 시작한 사격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점점 증폭되어 여러 인종으로 퍼져 나간다. 작은 사건은 국제 문제로 변화고 국경을 넘어 다른 인종 사람에게 폭발적인 사건으로 변화되는데 이거야 말로 나비효과이다.
아모레스 페로스 보다 뛰어난 구성력을 보이며 인간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바벨은 여러 언어 속에서 소통의 단절을 보여주고 있다. 21 그램이 조용한 침묵속에 깊은 내면을 파헤친 작품이라면 바벨은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언어로 내면의 세계를 보여준다. 바벨은 아모레스 페로스의 치열한 생의 모습과 21그램의 날카로운 내면의 소리가 합해진 작품이다. 내면을 고통스럽고 사실적이게 담아낸 21그램의 섬세한 연출은 못따라가지만 바벨은 시퍼런 소리를 내며 인간의 소통 단절을 커다란 시선에 담아내고 있다. 혼돈이 가득한 언어들 속에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치에코의 모습은 영화의 핵심이다. 누구나 강한 욕망으로 자신의 삶속에서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부딪히면 살아가고 있고 소통하고 싶어 하지만 정말 중요한것은 언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통에는 언어가 중요치 않다. 마음이다. 이해하고 품는 것이다. 형사가 치에코를 위로하듯이 삶을 이해하고 다가서는 것인데 우리는 영화속 보모 아멜리아의 모습처럼 한발 늦게 깨닫고 치에코 처럼 자신의 세계에 갇혀 그 방법을 모른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소통의 방법을 조금씩 알게 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그 방법을 소중함을 잃어버린후 깨닫게 되어 슬프게 다가온다. 슬픔이라는 정서도 하나의 소통일 수 있으리라. 영화가 끝난 후 욕망이 내 안에 감옥처럼 갇혀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을 필요 하는 마음속 격렬한 움직임. 표출하고 싶지만 단절되어 있는 세상.
바벨을 통해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또 한번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