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이루고 싶어하거나 어떤 대상을 가지고 싶어하거나 어떤 상태를 누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욕망이라는 작은 단어로 정의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내면속에서 작은 욕망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간다.
어쩌면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수단이 아닐까.. 자신이 진정 누비고 싶은 부나 명예,권력 등을 가지기 위해
경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면의 욕망에 대한 소재는 <파이트 클럽>에서 ‘잭’속에 ‘타일러’가 내재되어
자신과 전혀 다른 욕망이 등장하기도 하고, <시크릿 윈도우>에서 ‘모트 레이니’가 이중인격으로 등장기도 하며, 심지어 <아이덴티티>에서 11명의 다중인격이란 충격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럼 <스위밍 풀>은 어떻게 내면속의 자신을 표현할까 잔잔한 신비감 있는 음악과 함께 영화는 시작한다.
규칙적 패턴의 생활에 지쳐가는 “사라 모튼” 그녀는 범죄 스릴러를 전문으로 이미 자리를 굳힌 중년의 여류소설가이다.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이 넘치고 고상함과 기품을 가지고 있다. 소재의 식상함을 느끼고 어디론가 떠나기를 원하는 그녀는 자신의 애인이자 출판사 사장인 “존”의 권유로 작프랑스의 별장으로 휴가를 떠난다. 넓은 평수의 집에 아무런 방해가 없기 때문에 그녀는 무척 마음에 들어한다. 몇일 후 고요함을 깨는 차소리와 함께 존의 딸은 “쥴리”가 등장한다. 한눈에 그녀는 개방적이고 섹시한 프랑스의 젊은 여성이고 사라는 고상함과 기품을 지니고 있는 보수적인 영국여성이다. 당연히 대조되는 두사람이기 때문에 갈등은 일어난다.
깨끗하고 맑은 자연과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쥴리는 매일 밤 파트너를 바꿔가며 하룻밤을 보낸다. 사라는 전기코드, 컴퓨터, 프린터와 씨름을 한다. 갈수록 시기심은 하늘을 찌른다. 우연히 알게 된 쥴리의 일기장을 본 사라는 범죄스릴러에서 쥴리를 대상으로 한 연애소설을 쓰기로 한다. 이제 쥴리는 사라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연구하게 된다. 그러던 중 쥴리는 사라의 쓰고 있는 소설을 보게 되고 놀란다.
어느날 쥴리는 평소에 사라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카폐 주인인 프랭크를 데리고 온다. 당연히 질투심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쥴리는 하룻밤 상대로서 프랭크를 상대하지만 프랭크는 거절한다. 이에 분노를 느낀 쥴리는 살인을 일으킨다. 사라는 어쩔줄 몰라하는 쥴리는 도와 그를 땅에 묻고 조용히 사건을 넘길려고 한다. 그리고 쥴리도 떠나고 사라도 영국으로 떠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반적인 영화와 다를 것이 없다.
1시간 30분 동안 보았던 내용을 한눈에 뒤짚는 순간이 없는 것이다. 사라가 출판사 사장에게 가서 새 책을 다른 출판사와 계약하고 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딸에게 고맙다고 책 한권을 주라고 건낸다. 그 순간 존의 딸이 들어오고 사라는 아는 척을 안한다. 왜냐하면 사라는 우리가 1시간 30분 동안 보아왔던 쥴리가 아니다.
얼굴과 몸매가 섹시하지 아니하고 고정기를 끼고 주근깨가 여기저기 있다.
바로 반전이다.
여지껏 사라와 함께 있던 쥴리는 누구일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스위밍 풀>을 보면 의문점이 몇 개는 생기기 마련이다. 사라의 어머니 부분, 사라의 파트너의 나이가 많다는 것, 사라가 프랭크를 죽이고 나서 증거를 불 태울때 책도 태워버려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부분이다.
첫째 쥴리의 어머니 부분. 사라와 쥴리의 대화부분에서 쥴리 어머니는 프랑스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라가 별장 관리인의 딸에게 묻어보는 장면에서 사라의 어머니는 죽었다고 한다.
둘째 쥴리의 파트너들이 그녀보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쥴리 나이 또래의 여성은 그 또래의 남성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취향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계속 데려오는 것은 이상하다. 오히려 사라의 상대라고 보아야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쥴리가 프랭크를 죽이고 나서 증거를 불 태우는 부분이다. 쥴리가 사라의 방에서 적고 있는 소설을 읽는 장면이다. 분명히 사라는 쥴리에 대해서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쥴리는 그것을 보고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 행동은 쥴리가 사라의 의도대로 행동하겠다는 것이다. 어쩌보면 일부러 프랭크를 데리고 왔다고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위의 것들로 보았을 때 쥴리는 존재하는 인물도 아니고 성격이 변하는 입체적 인물도 아니다.
쥴리를 쥴리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사라의 내면에서 표출된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쥴리가 사라에게 어머니의 소설 초본을 남겨주는 부분에서 사라의 어머니로서 책을 내어보고 싶은 욕구를 바람피는 출판사 사장보다 처음에 힘들게 해줬던 사라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프랭크를 살인했을
때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고마움을 느끼고 그렇게 행동했을 것 같다.
후자는 쥴리를 사라의 내재된 욕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라의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고 파트너들은 사라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상대들이고, 책 부분에서도 쥴리는 사라를 위해 행동한 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된다.
전자보다 후자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왜나하면 1시간 40분의 시간 속에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마 내재된 욕망으로 생각해야 할 거같다.
<스위밍 풀>을 보면서 역시 영화는 한 순간도 놓쳐서 안된다는 것을 느꼈으며, 프랑소와 오종 감독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프랑수아 오종 감독만이 보여주는 익살스럽고 장난끼 넘치는 유머는 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역시 유명한 감독임에 틀림이 없다. 한번 익살스럽고 장난끼 넘치는 유머가 어떻게 연출되는 지를 알고 싶다. 방학 동안 프랑스 영화를 조금씩 볼 것이지만 오종 감독이 첫 스타트가 아닐까 ..
p.s 제가 부분적으로 다른 사람의 글을 가져온 것이 있는데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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