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도시의 상처받은 영혼들...
이상하게 '홍콩'이라는 지명은 단순히 높은 빌딩과 번쩍이는 네온사인으로 대표되는 발달된 도시의 이미지와는 별개의 이미지(고독, 쓸쓸함, 배신, 어두운 뒷골목, 이별 등 정서적 느낌이 강한)로 각인되어 있다. 그런 정서를 느끼게 되는 것에는 홍콩의 실제 역사(중국 반환/조류 독감의 유행)의 반영이기도 하겠지만, 홍콩을 그려 온 많은 영화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런 홍콩의 이미지를 만든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무간도>일 것이며, 선하지만 쓸쓸한 눈빛의 양조위일 것이다.
영화는 2003년 신년의 시끌벅쩍함으로 시작한다. 연인으로 인해 고민에 빠진 젊은 형사 아방(금성무)에게 반장 유정희(양조위)는 술의 쓴맛과 함께 위스키의 기원에 대해 말해준다. “술은 원래 소독제로 썼대. 그런데 세상에 소독할 게 그리 많은가. 5년쯤 뒀다 마셔보니 맛이 기막혔다는 거야.” 둘의 대화는 용의자 출현으로 중단되고, 강간과 살해 용의자의 범행현장을 급습한 유정희는 다른 형사들이 보는 앞에서 범인을 가혹하게 폭행한다.
어느날 아방의 여자친구가 자살을 하고, 충격을 받은 아방은 경찰을 떠나 술에 찌들어 사는 사립탐정으로 자신 스스로를 괴롭힌다.(이 때부터 아방이 등장하는 장면에는 어김없이 술이 같이 등장한다. 보는 사람이 취할 정도로.. 꼭 술이라는 매개로 아방의 심정을 표현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유정희는 아내 숙진(서정뢰)과 달콤한 신혼살림을 보내지만, 아내 숙진의 부유한 아버지와 집사가 잔인하게 살해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아내는 누군가에게 미행 당한다는 고통을 호소한다. 경찰은 마카오 출신 범죄자 2명이 범행 후 장물 처리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나 둘 다 죽었다며 사건 결과를 발표하지만, 숙진은 이를 신뢰하지 않고 아방에게 별도로 조사해달라며 의뢰한다. 아방은 유정희를 가리키는 여러 단서들 앞에서 갈등한다.
이 영화 포스터의 홍보문구를 보면, '숨막히는 두뇌게임' 등으로 표현하고 있어, 마치 고난이도의 스릴러 영화를 연상하기 쉽지만, 영화 <상성 : 상처받은 도시>는 범행 과정에서 이미 범인의 정체를 분명하게 밝히며 시작한다. 따라서 <상성>은 엄정화 주연의 <오로라 공주>처럼 '누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가 중요한 영화다. 그 '왜'에 정서적으로 동의한다면 꽤나 만족할만한 영화겠지만, 그것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매우 허술하고 맥빠지는 영화로 비춰질 수도 있다.
거기에 아방이 찾은 가장 중요한 단서인 마카오에서 벌어졌던 죽은 범죄자의 과거 이야기는 특별히 둔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유정희의 이야기라는 건 쉽게 예측 가능하다. 따라서 마지막 아방과 유정희의 대화에 대해 '충격적인 비밀'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영화와 홍보의 불일치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는 <상성>을 '상처 받은 도시에서 상처 입은 영혼들의' 가슴 절절한 멜로 영화라고 느꼈다. 원수의 딸이고, 복수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누워있는 그녀의 하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는 양조위의 쓸쓸한 눈빛은 정말이지 가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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