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언론에서 꿈을 이룬 사람들의 감동적인 성공기를 자주 볼 수 있지만, 그런 얘기들이 언론에까지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그런 사례가 흔치 않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경우, 꿈은 세월이 흐를수록 작아진다.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을 어른이 되어서 그 크기 그대로 이룬다면 그것은 정말 가장 성공한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 역시 어렸을 때에는 의사가 되겠다느니, 하버드대를 가겠다느니 하는 지금 생각하면 "어이쿠" 소리가 절로 나올 만한 꿈을 꿨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의 크기에 나의 꿈을 맞춰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부하게 들릴지라도 확실한 사실은, 꿈을 품고 있다는 것이 현실을 이기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그 원동력은 때론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 <황색 눈물>은 이렇게 어렸을 적부터 품어온 꿈이 이제 막 현실과 충돌하려는 순간, 그 눈물날 만큼 찬란한 청춘의 나날을 조명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에서 사랑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던 이누도 잇신 감독은 이제 <황색 눈물>에서 꿈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는 올림픽 개최를 1년 앞둔 1963년의 도쿄. 올림픽 이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에 부푼 도쿄의 작은 마을 아사가야에서 네 청년이 만난다. 만화가를 지망하는 에이스케(니노미야 카즈나리), 가수를 꿈꾸는 쇼이치(아이바 마사키), 화가의 길을 걷기로 한 케이(오노 사토시), 소설가임을 자처하는 류조(사쿠라이 쇼). 위독한 에이스케의 어머니를 구급차에 모시는 일로 어쩌다 만난 이들은 서로의 꿈을 완전히 이룬 다음에 훤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로 기약한다. 하지만 불과 2달 후, 네 사람은 2달 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여전히 꿈은 열심히 꾸고 있지만 딱히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에이스케는 어쩌다가 자신의 하숙집에 쇼이치, 케이, 류조 세 사람을 재우게 되고, 이렇게 네 사람의 동거 생활은 얼떨결에 시작된다. 네 사람은 한적하면서도 나름 치열하게 자신의 꿈을 좇지만, 그 꿈을 완전한 크기로 이룰 수 없다는 걸 점점 알게 하는 현실 속에서 네 사람은 좌절해야 할 상황을 맞기도 하는데. 꿈은 있지만 언제 그게 현실이 될지는 기약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네 청년은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일본의 대중문화의 단면들 중에서 꽤나 부럽게 느껴지는 건, 아이돌 스타들의 활동범위를 "아이돌 스타"라는 호칭 안에 가둬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이 작가주의 영화에 출연하고, 연기력을 인정받아 각종 연기상을 받는 경우는 일본에서 비일비재하다. <황색 눈물>도 그런 점에서 인상적이다. 이누도 잇신 감독은 자신이 그동안의 영화에서 꾸준히 그려온, 애틋하면서도 처연한 청춘의 세계를 그려내는 과정에서 아라시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 전원을 끌어들였고, 그들에게서 아이돌 스타로서의 화려한 모습을 완전히 걷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그들이 그룹 활동을 할 적에도 곧잘 망가지기로 유명하다지만, 이 영화에서 그들에게 세련되고 깔끔한 모습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하나같이 숯기 없고, 철이 덜 들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덜 자란 청년들처럼 보일 뿐이다. 이러한 외적 변화 속에서 연기 또한 모두가 다양한 개성을 적절히 보여준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맡은 에이스케 역이라고 할 수 있다. 맨 처음 영화의 문을 여는 나레이션도 그렇고, 나머지 세 사람을 집에 모여 살게 하는 사람도, 그들을 먹여 살리는 사람도 그이기 때문이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왜소한 모습을 지닌 반면 그나마 가장 어른스럽고 현실적인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안정되어 있는 듯 끊임없이 부유하는 청춘의 모습을 꽤 잘 살려냈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통해 잘 하면 오스카상 후보에도 오를 수 있었다고 할 정도의 실력이니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가수가 꿈인 쇼이치 역의 아이바 마사키도 대책없이 즐거운 청춘과 사랑 앞에 어쩔 줄 모르는 애틋한 심리를 모두 지닌 어린 청년의 모습을 잘 소화해냈고, 화가 지망생인 케이 역의 오노 사토시는 가장 얌전한 듯하지만 반대로 심적으로 가장 큰 고통을 겪기도 하는 감정의 부침이 심한 캐릭터를 잘 표현해냈다. 소설가 류조 역의 사쿠라이 쇼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외모 관리에 가장 소홀한 모습을 보여주며 어딘가 나사 한쪽이 풀린 듯 시종일관 맹한 모습으로 아낌없이 자신을 망가뜨리는 용기를 보여줬다. 유지 역의 마츠모토 준은 나머지 네 멤버들에 비해서는 주연급이라기보다는 조연급 내지 카메오로 느껴질 만큼 그 비중이 눈에 띄게 적긴 하지만 중간중간 한번도 좌절해 본 적 없는 듯, 다소 어벙한 듯 씩씩하게 등장하는 모습은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일본 영화의 서정성이 늘 그러하듯이, 이 영화 역시 뚜렷한 극적 굴곡 없이 밋밋하다 싶을 정도로 잔잔한 전개를 이어간다. 때문에 <눈물이 주룩주룩>이 제목때문에 욕깨나 먹었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제목에 "눈물"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최루성 영화 아니냐는 오해는 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멋진 모습으로 보란듯이 성공해 다시 만나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몇 달 되지도 않아서 전혀 변한 게 없는, 아니 더 초라해진 듯한 모습으로 만난 이들의 일상은, 뭔가 생각하고 있는 건 많은 듯하지만 거기에 비해 진행되는 건 없는 여유로우면서도 지리한 나날들이다.
류조와 쇼이치, 케이는 각자의 꿈을 향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곤 있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어디까지나 자신의 꿈만 쫓고 있는 것이 현실 감각이 참 무디다는 생각이 들다. 방에 틀어박혀 기타만 뚱기거나 그림만 그리고, 다방에서 글은 쓰지 않고 구상만 밑도끝도 없이 하는 이들은 아직까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는 모양이다. 하루 세 끼는 그저 식당에서 시켜 먹으면 그만일 뿐, 더 좋은 노래와 글과 그림을 만들면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다는 낙천적인 사고방식이 아직 그들에게는 더 익숙한 모양이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그들의 한가하고 여유로운 모습은 낙천적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에이스케는 이들보다 앞서 현실과 충돌하고 있는 중이다. 역시 만화가라는 필생의 꿈을 안고 나왔지만, 그것이 곧바로 이익이라는 명목과 연결되는 순간 현실의 장벽을 느낀다. 성인만화는 몰라도 아동만화만 그렸다간 쫄딱 망한다는 출판사의 엄포, 다른 건 신경쓸 새도 없이 유명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몇 주 간 죽자사자 일만 해야 하는 고된 현실은 그저 꿈만 쫓으면 될 줄 알았던 에이스케를 허탈하게 만든다. 여전히 꿈을 좇고 있는 자신은 아직 이렇게 빈곤한 데 비해, 함께 문하생으로 지냈다가 먼저 결혼이라는 현실의 길을 선택한 옛애인은 앞길이 훤한 삶을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극심한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현실적인 이득을 위해 자신의 꿈의 모양을 바꿔야 하고, 크기도 줄여야 하는 현실에, 그는 돈을 벌더라도 어딘가 허한 구석을 끊임없이 안고 있다. 더구나 편찮으신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먹여 살려야 하는 입장에서, 그는 어느덧 어느 누구보다 먼저 꿈과 현실의 충돌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에이스케가 앞서서 현실의 장벽을 몸소 느끼게 되는 과정에서, 나머지 세 청년들도 점점 현실이 자신들이 생각하던 만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오로지 꿈만 바라보고 직진하기에 세상엔 신경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사랑의 감정에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 때론 그 꿈을 이루기에 자신의 능력이 한없이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 먹고 사는 것은 또 오죽하랴. 이들은 처음엔 "예술가는 배고프다"는 말을 되새기며 이렇게 굶주리는 것도 다 경험이라고 스스로를 토닥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적극적으로 생계에 뛰어든다. 꿈을 이루려면 일단 생계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가정 아래에서 말이다. 예술가라는 폼나는 꿈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예술가의 헝그리 정신을 꿋꿋이 지킨 것도 아닌, 앞서 말했듯 아직 모르는 게 많고 철이 덜 든 청년들이기에 이들은 기꺼이 생계 전선에 뛰어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게 되는 건 결국 생계가 또 꿈의 발목을 붙잡고 만다는 씁쓸한 사실일 뿐. 이런 식으로 이들은 헤매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한다. 처음에 갖고 있던 꿈은 점점 작아지고 점점 희미해져가면서. 그렇게 혈기왕성할 것만 같던 그들의 젊은 시절은 나른하고 지루하다.
이렇게 영화는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의 도쿄가 설레임의 와중에 경제난을 겪듯이, 성공을 꿈꾸는 와중에 숱한 실패를 겪는 청춘들의 모습을 통해 희망이 드리우기 이전에 길을 가로막는 현실의 냉정한 모습을 덤덤하게 직시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렇게 실패와 좌절이 거듭되는 와중에도 그것이 결코 비극은 아님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꿈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현실은 좀처럼 나를 자유롭게 해주지 않는 상황이었음에도 이상하게 그 상황을 지났던 에이스케의 단칸방은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너무도 애틋하고 더 머물고만 싶은 공간으로 머리 속에 자리잡는다. 그것은 그 방에서 젊은이들이 단순히 좌절만 하고 시간낭비만 한 것이 아니라, 방황과 좌절을 통해서 인생을 바라보는 법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잊었다 싶으면 나오는 유지는 매번 등장할 때마다 늘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한다는 듯 씩씩하고 활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론 이런 유지의 모습이 다섯 청년들 중 가장 행복한 모습이 아닌가 싶다. 나머지 네 청년은 지금의 삶이 자신들이 원하는 삶이 아니고, 때문에 더 나은 모습으로 자신이 진정 원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기를 끊임없이 꿈꾼다. 비록 결코 만만치 않은 현실 속에서 그들은 능력의 한계때문에, 사랑의 감정때문에 여러번 눈물 짓지만,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와중에도 넋놓고 한없이 여유로웠던 그때처럼, 이들은 그 좌절의 순간도 넉넉하게 버텨낸다. "인생은 한번도 우리를 속인 적이 없다"는 바보스러우리만치 낙천적인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어떤 방향으로든 인생은 자신에게 더 강한 힘과 굳은 신뢰를 안겨준다는 얘기를 믿으면서. 의욕은 강했지만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싸우기보다는 적당히 웅크리는 갈대같았던 이들에게 꿈은 작아질 수는 있어도, 결코 죽지는 않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 여름날의 추억도 더 애틋하게 남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황색 눈물>의 젊은이들은 이렇게 꿈은 가졌지만 현실과 당당히 맞선다기보다는 살짝 갓길로 물러나 다소 답답해 보일 만큼 여유를 즐긴다. 그러다 뒤통수를 맞고 눈물을 흘리긴 하지만, 그 눈물이 그들을 무릎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참고 버틸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되게 함으로써 넉넉한 마음으로 결국은 현실을 이겨낸다. 비록 꿈을 이루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삶을 살지라도, 누군가는 여전히 펜을 부여잡고 꿈을 그리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분명 가슴 한켠에 아직 잊지 않은 꿈을 고이 접어 간직한 채 언젠가는 꼭 다시 펼쳐 낼 것이라는 아련한 기대를 품게 한다. 영화는 도쿄 올림픽 개최의 순간과 함께 그렇게 쓸쓸했던 청춘에 비칠 희망의 햇살을 더욱 뚜렷하게 뿌린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간다 해도 결국 인생은 우릴 속이지 않고 눈부신 올림픽을 열어 줄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늘 우리의 젊은 날에 대해 씁쓸하지만 따뜻한 시선을 보내 온 이누도 잇신 감독은 <황색 눈물>을 통해 그 온기를 다시 뿜어냈다. 눈물의 색깔이 노란색인 이유는, 비록 쓰라리더라도 그 색깔만큼 따스하다는 뜻일까.
한 마디 더 : 개인적으로 엔딩 크레딧을 가능하면 보시기를 권한다. 이 영화의 원작은 일본의 유명 만화가 나가시마 신지인데, 원작에 등장한 다섯 청년의 무딘 듯 따뜻한 모습이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데, 그들의 꿈이 빛은 바랬지만 구수한 향기가 남은 오래된 책장처럼 더욱 아련하고 푸근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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