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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아티스트와 매력적인 잇걸의 비하인드 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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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리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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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내가 언제나 동경해오던 시절이었다. 락스타와 락큰롤과 보드카와 말보로와 코카인이 있는 그 곳. 소란스럽고 격정적인 그 시절의 모습을 이제와서 어찌 모방할 수 있으랴. 돌아가기엔 너무나 차갑고 매끈해져버린 것을. 영화 '팩토리 걸'은 팝 아트와 록큰롤, 패션과 스타일이 살아숨쉬는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 내내 '믹 재거', '벨벳 언더그라운드', '잭슨 폴록', '로이 리히텐슈타인'등의 반가운 이름들이 등장할 때마다 - 심지어는 핑크 코트를 입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한 대 얻어맞았다는 마크 제이콥스의 이야기를 얻어들을 때마저도 - 예기치 못한 낯익은 유명인들의 등장에 반갑고 즐거운 마음 감출 길이 없었다. 심지어는 에디 세즈윅의 친구인 두 남자의 이름마저도 '척'과 '시드'이다. 설정인지 사실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물론 두 사람의 이미지는 '척'과 '시드'의 이미지와 전혀 다르다. [아쉽게도 말이다]
이 영화는 시에나 밀러의 영화이다. 말그대로 시에나 밀러의 재발견이랄까. '나를 책임져, 알피'에서 보여주었던 '파티걸'의 이미지를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차용하고 있지만, 동시에 삶의 벼랑 끝에 몰린 마약중독자의 절절하고 위태로운 내면연기가 더해져 배우로서 한단계 더 성숙했단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도전적인, 그러나 겁에 질린 큰 눈을 한 부서져버릴 것만 같은 상처입은 재벌가 아가씨를 다른 누가 연기할 수 있단 말인가. 영화 내내 지겹도록 마셔대고 피워대고 흡입하고 주사를 맞지만, 그 모습이 너무도 잘어울려서 보는 사람이 다 난감할 정도였다. 시에나 밀러에게는 그런 다크한 아름다움이 정말 잘 어울린다. 시꺼먼 눈화장을 하고 줄담배를 피워대며 반나체로 돌아다녀도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다. 덕분에 나도 방구석에서 샴페인을 들이키며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있지만. 이건 절대 영화 속 그녀의 모습이 멋져보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공허함이랄까. 이 영화, 사실 유쾌하지만은 않다. 아니, 유쾌할 것이 전혀 없는 영화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까.
'팩토리 걸'은 시에나 밀러의 영화인 동시에 그녀가 분한 '에디 세즈윅'의 영화이기도 하다.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하고, 통제당하고,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그녀는 재벌집 아가씨이지만 그 누구보다 불행한 일생을 살아온 상처입은 영혼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앤디 워홀은 말그대로 '특별한 존재'였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행복을 느끼게 해준_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앤디 워홀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라는 허울뿐인 이유를 차치하고라도, 이에 앞서 앤디 워홀은 에디 세즈윅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고, 사랑하고도 사랑인 것을 몰라서 그녀를 힘들게 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지나가버린 안타까운 사랑의 기억'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 내내 에디 세즈윅은 가련하고 불쌍한 동정의 대상으로 그려지며, 앤디 워홀은 '나쁜놈'정도로 그려지고 말지만. 그러나 영화 첫부분에 앤디 워홀의 고백이나 엔딩에서의 고백성사 장면은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그 어떤 정서적 교감도 육체적 접촉도 없었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랑'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것도 사랑이야?'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답해주리라.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면 무엇이었을까'라고.
'메멘토'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펼쳤던 가이 피어스는, 이 영화에서 다시 한번 놀라울만치 인상깊은 연기를 펼친다. 아니, 그는 있는 그대로의 앤디 워홀이었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그냥 앤디 워홀 그 자신이었다. 비록 이 영화가 '반 고흐'나 '잭슨 폴록', 혹은 '프리다'와 같은 아티스트의 일대기를 그린 감동적 대서사극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것은 앤디 워홀의 뮤즈인 에디 세즈윅의 영화라고 아무리 떠들어대어도, 그의 열연을 제하고는 이 영화를 논하지 못하리라. 정말이지 배우들의 열연에 대해서는 10점 만점을 주고 싶은 영화였다. 그러나 60년대라는 동경어린 향수와 흥겨움을 더해주는 신나는 음악, 참신한 몇 개의 컷들과 배우들의 열연, 무엇보다도 이제껏 다루어오지 않았던 '싱싱한 소재'인 앤디 워홀과 그의 뮤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많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팩토리 걸'은 '괜찮은 영화'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아직은 신인에 가까운 감독의 역량부족이랄까. 시퀀스간의 전환과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무엇보다 에디 세즈윅의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 하겠다. 그래서 그녀는 '패션 아이콘'이자 '아이돌'이었나? 그런 화려한 수식어로 가려진 상처받은 내면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인가? 그렇다면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퍼지와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서 더 캐묻지 않고, 상처입은 과거의 이야기들을 더 끈질기게 추적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관객은 그저 에디의 입에서 나오는 '아버지는 나를 괴롭혔어'와 '아버지는 민티를 죽음으로 몰고 갔어'와 같은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표현만을 반복해서 듣고 보고 믿을 수 밖에 없다. 만약 에디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이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이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아니라 그녀와 앤디 워홀간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싶었다면 - 사실 영화가 의도한 것은 이쪽인듯 싶지만 - 그녀가 빌리를 따라가지 않고 왜 앤디의 곁에 남아야만 했는지, 앤디의 고백에서 그녀는 앤디에게 '특별한 존재였다'라고 밝혔던 것처럼 그녀에게 앤디는 어떤 존재였는지,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설명따위 필요없고 맥락으로 아는거지!라고 우겨댄다면야 나의 둔한 감성을 탓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이도저도 아닌게 되어버렸다. 에디 세즈윅은 동정받아야 할 불운의 대상인가, 혹은 앤디 워홀의 뮤즈로 혹은 앤디 워홀의 그늘에 가려진 패션 아이콘이자 아티스트로 재평가 받아야 하는가. 아니, 그보다도 이건 정말 에디 세즈윅의 영화가 맞긴 하는건가? 앤디 워홀과 에디 세즈윅의 영화로 재정립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이에 덧붙여 앤디 워홀과 에디 세즈윅 이외의 캐릭터에는 일관성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라 하겠다. 특히 '척'과 '시드'로 나오는 에디의 친구들은 도대체가 캐릭터 파악이 분명하게 되질 않는다. 후반부에 시드가 [시드가 맞는지조차 모르겠다] 에디에게 사랑고백하는 장면은 거의 코메디에 가까웠다. 어디서 그런 낡고 진부한 말도 안되는 로맨스를 갖다붙인단 말인가. 이 영화는 적어도 '앤디 워홀'을 다룬 영화다. 이것이 무얼 의미하겠는가. 절대로 식상하고 지루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닌가. 이 영화는 '프리다'나 '클림트'에 머무르기 보다 '핑크 플로이드의 벽'이나 '시드와 낸시'로 나아가는 것이 나았다. 그러나 감독은 지나치게 몸을 사린 듯한 느낌이다. 최소한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부분 아쉬움이 깃들었다. 더 나아가도 되었을텐데, 더 덧붙여도 되었을텐데. 매끄럽지 않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그냥 덮어두자. 앤디 워홀을 다룬 영화라면 그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각오하고 있었으니.
극중에서 앤디 워홀은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느냐는 질문에 '가장 잘 만들어진 최악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대답한다. '팩토리 걸' 역시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만들어지다 만 영화'라는 느낌밖에 주지 못했다. 이것은 절대로 이 영화가 나쁘다거나 별로라는 뜻이 아니다. 적어도 괜찮은 정도의 영화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괜찮은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되었다. 앤디 워홀과 에디 세즈윅을 가지고 이 정도에 그쳐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스위트룸'이나 '알리바이'가 좋은 시나리오를 가지고도 힘이 딸려 7점짜리 영화에 머물고 말았듯이, 하물며 나름의 '호화캐스팅'을 자랑하는 이 영화가 그 좋은 이점들을 지니고도 7-8점짜리 영화에 머문다는 것은 참을 수가 없는 일이다. 워낙 기대한 바가 컸기 때문일까. 마음에 들었고, 보면서도 즐겁고 좋았지만, 두 번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왕의 남자'나 그나마 최근작 중에서는 '판의 미로'가 주었던 영화를 본 후의 극단적인 우울함과도 무관하지는 않겠지만은.
평범한 세상에서 살기에는 너무도 특별했던 두 상처받은 영혼의 이야기, 왜 그는 그녀를 잡지 않았을까. "그녀는 마치 망가지기로 작정한 사람같았어요. 멈추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멈추게 할 수 있었겠어요." 그것은 비겁한 핑계였음을. 당신이라면 충분히 멈추게 할 수 있었는걸. 그녀는 멈추기를 원하지 않았던게 아니라 당신이 자신을 돌아봐주기를 원했던거야. 잡아주기를, 멈춰주기를 원했던거야. 왜 사랑을 사랑으로 알지 못하니. 왜, 왜 그녀를 잡아주지 못했니. 우습게도 엇갈리고 나서야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천재 아티스트나 저속한 속물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다 그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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