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한재림(2007,112분)
배우 : 송강호, 오달수, 박지영
070411 / 서울극장 / 15:20 / 혼자
아부지. 아빠.
어버이날엔 어머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뭉쿨한 사연도 많이 나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아부지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나오더라구. 왠지 ‘아버지’가 아니라 ‘아부지’라 불러야 할 것 같은 우리 아부지. 우리들의 아부지.
언니가 엄마한테 쓴 편지 보니깐 자기가 셋째를 가져보니 엄마, 아부지가 우리 셋을 대학까지 다 보내고 어떻게 키웠는지,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젠 알 것 같다고 하더라. 입는 거 먹는 거 노는 거 별로 부족함도 모르고 살았던 것 같은데, 우리 세 형제가 그렇게 지내기 위해서 어무니 아부지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산 거냐고.
아직도 기억나. 슈퍼 하시느라 아침 일찍 나가셔서 밤늦게 돌아오시면서 당신의 몸보다 세배는 큰 짐을 작은 오토바이에 싣고 다니시던 아부지. 어느 날 시내 혼잡한 도로 한 가운데서 오토바이랑 굴러서 물건이 다 흩어진 적도 있다고. 어떤 영화관 이었지? 이젠 기억도 안 나네. 서울의 어떤 영화관 밑에서 분식집을 하시던 엄마가 그날의 매상을 택시에 놓고 내리셨다고-생전 택시 한 번 잘 안 타시는 분이 그날 택시를 왜 타셨더라?-집에 와서 어찌나 우시는지 난 그때 세상이 너무 무서웠어. 엄마 아부지가 울면, 어린 나는 세상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어.
우리 아부지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말이 없을까. 그러면서도 일에 치져 돌아오실 때는 왜 딸이 좋아하는 고기만두(김치만두는 딸이 안 좋아한데)같은 걸 사 가지고 오실까. 우리 강인구아부지, 그 고기만두가 다 식어가도록 라면만 먹던데. 맨날 라면만 먹던데. ‘직업이 남다른’ 아부지가 우리 딸은 꽤나 부끄러웠나봐.
안 그래도 우리 사는 거 느와르인데 우리 강인구아부지, 조폭이니 말 다했지. 가족들 눈에는 강인구아부지 얼굴에 ‘조폭’이라고 써 있는지 몰라도 강인구아버지는 거울 보면 당신 얼굴에 ‘생활’, 이렇게 써 있나봐. 가족들 먹여살리는 거, 유학간 아들 학업 계속 시키는 거, 딸도 유학 보내는 거, 그거만 눈에 보이나봐. 자기가 조폭인 거, 깡패인 거, 우아하지 못한 거 그런 건 먹고 사는 문제에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해.
강인구아부지는 ‘고객’과 부하들이 개천에서 뒹구는 거 보면서 “아름답다. 아름다워.” 중얼거리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거 사랑하잖아. 참을 만큼 참고 또 참아 보는 인내심 많은 부인이랑, 유학가서 티끌없이 공부에 전념하는 아들내미랑, 아빠만 보면 틱틱대고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소리쳤다가 술마시고 창칼 손에 든 아빠가 무서워서 경찰에 신고해버린 딸자식이랑.
당신은 겉만 번드르르한 텅 빈 집에 홀로 앉아 라면 먹으면서 가족이 보내 준 ‘즐거운 우리 집’같은 홈비디오 보며 질질짜다가. 나는 왜 저기 없는 거야!, 버럭 하여 일단 라면냄비를 던져 버리긴 했는데, 누가 치워줄 사람도 없고, <우아한 세계>는 분연히 던지고 나서 화면전환이 되어 까만 양복 입고 멋들어지게 담배피는 모습을 잡아주는 ‘우아한’ 영화가 아니었으므로, 영 우아하지 못한 우리 강인구아부지는 궁시렁궁시렁 걸레 갖다가 라면국물을 닦아내며 하얀 난닝구 입은 듬직한 등을 꿈트울 꿈트울 움직일 뿐이지만.
아부지가 울 때 나는 엉엉 우는 모습을 찍어 그들에게 손수 보내주고 싶었지만 그건 또 아부지가 바라는 게 아니겠지. 아부지는 가족들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는 남자니까.
아빠. 아부지. 세상은 왜 이렇게 느와르일까. 어른이 되면 안 무서울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세상은 훨씬 더 무섭네. 하지만 괜찮아. 눈물이 없는 아부지가 있는 걸. 눈물도 없고, 힘든 줄도 모르고, 무슨 일이든 하고, 슈퍼맨 우리 아부지!! 우리 아부지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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